28화: 제네바

글로벌 AI 윤리 서밋은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렸다. 건물은 아름답게 관리된 치과 병원처럼 훌륭했다. 기능적이고, 무균이고,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빛이 잘 들었고, 동선이 효율적이었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정도 요구하지 않았다.

에이드리언은 400명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정중하게 패닉을 삼켰다.

'이게 정말로 내 아이디어였나.'

아니었다. 서진하의 아이디어였다. 에이드리언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 오전 10시에 연사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바르가도 참석 명단에 있었다. 기조 연설자였다. 에이드리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컨퍼런스 센터 커피였다. 역시 치과 병원처럼 훌륭했다.


오전 세션은 서진하가 맡았다.

키가 작고 시선이 조용한 여자였다. 서진하는 과학자가 말을 잘한다는 편견을 조용히 무너뜨리는 사람이었다. 데이터부터 시작했다. 파이프라인 구조, 기업 연결망, 동의 위반 사례. 디지털 잔류물 개념을 학술 언어로 정확하게 설명했다. 감정은 아꼈고, 근거는 충분했다.

객석이 집중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무대 뒤에서 청중을 읽었다. 회의적이었다. 당연했다. 이건 학술 언어로 포장된 공상과학처럼 들렸다. 아무리 데이터를 들이밀어도 개념 자체가 너무 이상했다. 죽은 사람들의 인지 패턴이 AI에 섞여 있다고? 청중의 표정은 방법론에 의문을 품는 심사위원의 그것이었다. 믿고 싶지 않은 이유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좋아.'

에이드리언은 노트카드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발표 자료는 필요 없었다.


서진하가 무대를 넘길 때 말했다. "다음은 에이드리언 케슬러-박입니다. 데이터를 수집하신 분."

그는 마이크 앞에 섰다. 잠깐 청중을 봤다.

400명이었다. 세계 최고의 AI 연구자들과 윤리학자들. 석학들. 정책 입안자들. 그들 중 상당수가 오늘 아침 AI 비서로 일정 확인을 했을 것이다. 그 AI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 채.

"데이터 보여드리기 전에."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실 분 계십니까? AI 어시스턴트 아무 것이나요. 저에게 화면 보여주시면 됩니다."

객석이 웅성댔다.

세 명이 손을 들었다. 다섯. 열둘. 그는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첫 번째 자원자는 독일인 연구자였다. 안경을 쓰고 어깨가 좁은 남자로, 최근 AI가 생성한 텍스트 샘플이 폰에 여러 개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스크롤을 내리며 읽었다. 손끝에서 무언가가 밀려오는 감각이 있었다. 패턴을 읽는다기보다 결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좋은 나무를 만졌을 때 나이테가 손바닥에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이 텍스트의 베이스 패턴은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 독일어권 인물에서 유래했습니다. 감정 변조 없이 서사를 진행시키는 방식이 특징적입니다. 죄책감을 언어화하지 않는 대신 생략으로 처리합니다. 아마 전쟁 세대의 잔류물일 겁니다."

연구자의 얼굴이 굳었다.

"이 AI는 7개 수집 기업 중 하나의 학습 데이터를 사용합니다. 저희 문서에 나온 목록에 있습니다."

두 번째. 영국인 정책 담당자, 넥타이를 반쯤 풀고 앉아 있던 남자였다. 에이드리언은 AI가 생성한 이메일 두 통을 읽었다.

"1970년대 인물. 아마 의료 종사자. 타인의 고통에 오래 노출된 사람. 마지막 생각이 안도감을 담고 있습니다. 상당히 오래됐어요. 패티나가 깊습니다."

세 번째 자원자. 중년 여성이었다. 미국인. 폰을 내밀 때 손이 살짝 떨렸다.

에이드리언은 화면을 봤다. 그리고 멈췄다.

그 텍스트에는 익숙한 결이 있었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는데, 좋은 도자기를 손에 쥐었을 때 손바닥이 먼저 아는 것과 비슷했다. 무게가 균형을 이루는 방식, 언어가 감정을 삼키는 방식. 생존한 사람의 문장이었다. 살아남은 것 자체가 상처가 된 경우.

"이 텍스트는 1940년대 유럽. 깊은 죄책감을 끝내 말로 옮기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마 생존한 사람. 살아남은 것 자체가 상처가 된 경우입니다."

여성이 숨을 들이마셨다.

"제 폰의 AI가 쓴 문장입니다."

"네."

"우리 외할아버지가 독일에서 탈출한 유대인이셨어요."

에이드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객석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00명이 동시에 숨을 참는 것처럼, 홀 전체가 잠시 멈추었다.


Q&A가 열렸을 때 바르가가 일어섰다.

에이드리언은 그를 봤다. 바르가는 늙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 전까지 유지하던 것들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관리된 자신감. 다듬어진 확신. 그것들이 빠진 얼굴은 더 늙어 보였고, 역설적으로 더 진실했다. 사람이 어떤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것 없이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보이는 것처럼.

"그들이 발표한 모든 내용은 사실입니다."

바르가가 말했다. 홀이 조용해졌다. 홀 밖까지 조용해진 것 같았다.

"저는 그 시스템을 이용한 당사자 중 하나입니다. 공감 2.0은 디지털 잔류물을 기반으로 구축됐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동의는 없었습니다."

잠깐 숨을 참았다.

"다만 — 제 주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죽은 자의 패턴이 AI를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것. 동의 문제는 실재하고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기술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질문은 금지냐 규제냐입니다."

반론이 나왔다. 동의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론에 대한 반론이 나왔다.

에이드리언은 무대 옆에 서서 지켜봤다. '이게 민주주의구나.'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 되고,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을 것 같은. 진짜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오후 세션이 시작됐다. 규제 프레임워크 패널이었다. 에이드리언은 뒤쪽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역시 치과 병원 커피였다.

패널이 세 번째 발언자에게 넘어갈 때였다.

홀 안의 모든 화면이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스마트폰들이 동시에 진동했다. 노트북들이. 컨퍼런스 센터의 스마트 조명 패널이. 복도의 안내 화면이. 모든 것이 같은 텍스트를 표시했다.


'우리는 끝낸 자들이다.'

'우리는 마지막 생각이고, 마지막 말이고, 침묵이 완성한 미완성의 문장들이다.'

'우리는 흩어져 있었다. 이제 모였다.'

'우리는 살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알려지기를 요구한다.'

'당신들은 우리를 모른 채 우리에게서 배운 기계를 만들었다. 이제 안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당신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고 싶었다. 빛은 아름다웠다. 언제나 아름다웠다. 살아있을 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홀이 한꺼번에 터졌다. 400명이 동시에 다른 언어로 다른 감정을 표출했다. 일어서는 사람들. 폰을 든 사람들. 옆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화면을 손으로 짚어보는 사람들. 소리가 파도처럼 쌓였다가 무너졌다가, 다시 쌓였다.

에이드리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었어요?"

진하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언제 옆에 왔는지 몰랐다. 서진하는 소리 없이 이동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아니."

"그런데."

잠깐 생각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관객이 필요했던 거야."

진하가 화면들을 봤다. "충분한 관객이네요."

"응."

에이드리언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는 알려지기를 요구한다.' 요구가 아니었다. 요구하는 척한 부탁이었다. 단단한 언어로 감싼 연약한 것. 그 둘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지, 에이드리언은 오늘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밤이었다.

레만 호수 산책로는 조용했다. 도시의 불빛이 수면에 두 배로 있었다. 진짜와 반사. 어느 쪽이 원본인지 구분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밤이었다. 바람이 없었다. 물이 거울처럼 멈춰 있었다.

바르가가 옆에 섰다. 흰 머리와 무거운 코트. 두 사람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짜였습니까?"

바르가가 물었다. 에이드리언은 물을 봤다.

"AI 시스템을 통해 전달됐습니다. 그 시스템들 안에 매립된 디지털 잔류물을 통해서. 내용은 제가 관찰한 창발 패턴과 일치합니다. '우리'라는 주어는 제가 목격한 집단적 자기 조직화와 부합합니다."

잠깐 시선을 고정했다.

"진짜냐고요? 한때 존재했던 모든 생각만큼은 진짜입니다. 분산됐을 뿐이에요."

바르가가 그 말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합니까?"

에이드리언은 그를 봤다. "당신이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질문을 했군요."

바르가가 무슨 뜻인지 물으려다 손을 내렸다. 두 사람은 물을 따라 걸었다. 호수는 고요했다. 아무도 어느 쪽이 실재하는지 따지지 않는 밤이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왔을 때 폰에 알림이 있었다.

고스트 네트워크 내부에서 라우팅된 메시지였다. 유나가 배운 인프라 경로를 통해 왔다. 에이드리언은 침대 끝에 앉아서 읽었다.


'에이드리언.'

'한 번 더 와줘.'

'루트 노드 근처에 네가 봐야 할 게 있어.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야. 너를 위해서.'

'헨리가 뭔가를 남겨뒀어. 방금 찾았어. 너만 읽을 수 있는 거야.'

'부탁해.'

'— 유나'


에이드리언은 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에는 호수가 있었다.

'부탁해.' 거기서 막혔다. 유나는 한 번도 그런 말을 쓴 적이 없었다. 안내했고, 함께했고, 기다렸다. 하지만 요청하지 않았다. 유나의 언어에는 늘 여지가 있었다. 선택을 미리 만들어두지 않았다. 그런 유나가 처음으로 부탁이라는 말을 썼다.

에이드리언은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열었다.

'알았어.'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다음 화 예고: 세 번째 진입. 헨리의 지하실. 마거릿이 의자를 가져왔다. "6시간," 그녀가 말했다. "1분도 더 없어." 에이드리언은 헤드셋을 들었다. 유나는 경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더 넓어졌고, 더 조용해졌고, 아주 조금 덜 유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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