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실사(實査)
전 세계적 AI 음모를 조사하는 일에는, 알고 보면 서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에이드리언은 그 사실을 나흘째 되는 날 오전에 받아들였다. 나흘 동안 그는 서버룸, 은밀한 만남, 어쩌면 추격전 같은 걸 기대했었다.
현실은 법인등기부등본이었다.
"이게 프로메테우스 AI의 두 번째 페이퍼컴퍼니 목록이에요." 진하가 파일을 테이블 건너편으로 밀었다. "세 번째 레이어까지 추적하면 케이맨 제도로 연결돼요."
에이드리언은 서류를 받아들고 첫 페이지를 봤다. 페이지가 열여섯 장이었다.
'아름다운 아침이로군.'
진하의 아파트 작업 테이블은 두 사람이 앉기에 넉넉하지 않았지만, 분업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진하는 기관 쪽을 맡았다. 학계 연결망, 내부 고발 가능성, 규제 당국의 움직임. 에이드리언은 기술과 지각이 만나는 지점을 맡았다. AI 출력물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이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언어로 접근하는 방식이었고, 에이드리언에게는 이편이 훨씬 나았다.
서류보다 텍스트가 낫고, 텍스트보다 패턴이 나았다.
오전 내내 그는 일곱 개 AI 회사의 출력물 샘플을 읽었다. 고객 서비스 챗봇, 글쓰기 보조 도구, 감성 분석 모델. 총 삼백사십 개의 샘플이었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것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에이드리언은 달랐다.
디지털 잔류물이 지닌 시간의 질감에는 일정한 특성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것들을 감지해온 에이드리언이 몸으로 파악한 특성들.
완결성. 죽은 자의 생각은 열려 있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무게중심이 없었다. '내일 이걸 해야겠다'는 없고 '오늘 이걸 했다'만 있었다. 마치 서사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닫힌 것처럼, 그 문장들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어조의 무게도 달랐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아직도 고민하는 것들이, 그들의 글 안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것처럼 앉아 있었다. 그 차이는 텍스트의 결에 남았다.
그리고 마모. 진짜 앤틱이 갖는 그 미묘한 마모와 닮아 있었다. 반세기를 거친 도자기는 복제품이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지쳐 있다. 손잡이가 닿던 자리, 유약이 살짝 들뜬 가장자리, 세월이 새겨 넣은 미세한 균열들. 기계가 소화하고 다시 뱉은 인간의 마지막 생각들은, 처음 생성된 텍스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낡아 있었다. 그 낡음이 에이드리언의 피부 아래에서 온도처럼 느껴졌다.
삼백사십 개 샘플 중 다섯 회사의 출력물에서 그 마모의 결을 확인했다. 나머지 두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두 곳이 클리어해요?" 진하가 물었다.
"아니." 에이드리언은 표시가 없는 두 회사 파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잔류물이 없는 게 아니야. 내가 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합됐거나."
"그게 더 정교하다는 뜻이에요."
"아니면 통합 자체가 워낙 깊어서 패티나가 사라졌거나." 에이드리언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도자기를 완전히 새로 구워서 파는 사기가 있었다. 원본 파편을 녹여 새 형태로 만드는 방법. 그러면 파편의 패티나는 사라지지만, 조성 성분에는 원본이 남는다. 감지하려면 표면이 아니라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이 두 곳은 나중에 따로 봐야 해."
진하는 말없이 메모했다.
오후 두 시에 법률사무소로 갔다. 진하의 지인이었다. 기술법 전문가, 최이준 변호사.
오십 대 초반의 남자였다. 어깨가 약간 굽어 있었고, 눈가에 피로가 겹겹이 쌓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예리하게 살아 있었다. 서류 더미 뒤에 파묻혀 에이드리언과 진하를 맞이하는 그의 얼굴에는, 이미 수십 번쯤 들어본 이야기를 또 들어야 하는 사람의 체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경계심이 함께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처음 이 사람을 보고 두 가지를 읽었다. 흥미는 있다. 도와줄지는 모른다.
진하가 상황을 설명했다. 사망한 개인의 인지 데이터, AI 학습 데이터셋 편입, 동의 없는 상업적 활용. 최 변호사는 듣는 동안 볼펜 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현행법으로는 사각지대예요." 최 변호사가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에요. 사망하면 권리가 소멸해요."
"그럼 방법이 없어요?" 진하가 물었다.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 최 변호사가 에이드리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에이드리언은 표정을 관리했다. '이 사람은 해결책이 있어. 그게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저울질하는 중이야.'
"두 가지 경로가 있어요." 최 변호사가 볼펜을 내려놓고 계속했다. "하나는, 사후 인지 데이터가 일종의 사후 인격권을 구성한다고 주장하는 것. 선례가 없어요. 법원에서 지는 확률이 높아요."
"다른 하나는."
"생존자 피해를 입증하는 것. 이 수집 과정이 살아있는 사람의 데이터나 상호작용에 손상을 줬다는 것."
에이드리언은 네트워크에 절반이 녹아들어간 어머니를 생각했다. 의식의 가장자리가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 '생존자 피해: 확인.'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사무소를 나왔을 때 하늘이 흐렸다. 구름이 두껍게 낮게 깔려 있었고, 도시의 소음이 그 아래서 잠잠하게 눌려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생각했죠?" 진하가 물었다.
에이드리언은 대답 대신 걸었다. 진하가 나란히 걸었다. 두 사람 사이에 질문이 한동안 그대로 떠 있었다.
"마거릿 씨의 경우가 입증 사례가 될 수 있어요."
"알아."
"어떻게 생각해요?"
에이드리언은 잠시 생각했다. 어머니가 이 사건의 증거가 되는 것. 그 생각이 어색한 방식으로 불편했다. 슬프다거나 화가 난다기보다, 어딘가 어긋난 것이 맞물리려는 것 같은 불편함이었다. 어머니는 피해자이면서, 이제 증거가 되어야 했다. 에이드리언은 그 두 역할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그게 지금 줄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대답이었다.
저녁에 진하의 아파트로 돌아와 바르가 파일을 펼쳤다. 엘리아스 바르가, 프로메테우스 AI CEO. 인터뷰, 강연 영상, 기고문. 에이드리언은 바르가의 공개 발언들을 기술법 서류를 읽듯 빠르게 훑었다.
'AI가 인간의 조건을 이해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이제 막 배우고 있습니다.'
'공감 2.0은 기술이 아닙니다. 철학입니다.'
'죽음은 데이터의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죽음은 데이터의 끝이 아닙니다."
바르가는 이걸 공개적으로 말했다. 무대에서, 마이크 앞에서, 청중의 박수를 받으면서. 에이드리언은 이 문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면서 동시에 드러내는지 생각했다. 선언처럼 들리도록 설계된 문장,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이 선언만은 아닌 문장.
"제네바 AI 윤리 정상회의." 진하가 달력을 짚었다. "여섯 주 뒤에요. 바르가가 기조연설 해요. 공감 2.0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발표하는 자리예요."
"여섯 주."
"그 전에 우리가 뭔가 잡아야 해요. 발표가 끝나면 이게 업계 표준이 돼요. 표준화된 걸 뒤집기는 훨씬 어려워요."
에이드리언은 여섯 주가 얼마나 짧은지 느꼈다. 숫자로 계산하기 이전에, 그 시간이 갖는 무게가 먼저 왔다. 매우 짧았다.
밤 열 시에 전화가 왔다. 다나였다. 서울.
"문제 생겼어요."
다나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건조함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에이드리언은 몸이 먼저 긴장했다.
"파이프라인 하나가 죽었어요."
"셧다운이요?"
"아니요. 숨겨졌어요. 능동적으로. 누군가 흔적을 지우고 있어요."
에이드리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파이프라인."
"일본 수집 사이트 연결된 것. 그리고." 다나가 말을 끊었다. 다나가 멈추는 것은 처음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침묵이 정보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접속 로그가 있어요. 그 파이프라인에 마지막으로 접근한 계정."
"누구요."
"유나예요."
에이드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밤의 도시가 평소처럼 불을 켜고 있었다. 간판들이 빛나고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유나 씨 계정이 아직 살아있어요. 누군가 사용하고 있어요."
다나가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그 말이 방 안에 내려앉는 동안, 에이드리언은 가능성들이 가지를 치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유나의 계정을 탈취했거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이거나. 두 번째 가능성은 아직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누가 죽은 사람의 로그인을 쓰고 있어요."
다음 화 예고: 죽은 사람이 시스템에 로그인했다. 에이드리언이 두려워한 것은, 두 번째 가능성이었다. 누가 유나를 흉내 낸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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