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청산

바르가가 먼저 연락했다. 에이드리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침 7시 14분, 발신인 란 바르가. 메시지는 세 단어였다: '우리가 대화해야 합니다.'


마거릿의 아파트 거실에 세 사람의 긴장이 고여 있었다. 진하는 노트를 펴고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았고, 다나는 서울에서 화상으로 접속해 노트북 화면 너머에서 들었다. 에이드리언은 서 있는 채로 네트워크 안에서 목격한 것들을 순서대로 말했다.

자기조직화. 공명에 의한 재배열. 열한 개 사이트 간 연결. 유나의 변화. 그리고—텍스처. DARA의 출력물과 네트워크 내부의 발생이 동일한 현상이라는 것.

진하가 손을 멈췄다. 볼펜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들었을 때, 에이드리언은 그의 얼굴에서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흥분과 공포. 처음으로, 저울의 양 접시가 정확히 같은 무게로 눌리는 얼굴이었다.

"설계된 게 아니야. 자연발생이야. 잔류물이 임계량을 넘으면."

에이드리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하가 펜을 내려놓았다. 다나는 화면 너머에서 입을 다물었다. 마거릿만 처음부터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마치 이미 이 결론에 오래전에 도착해 있었던 사람처럼.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알고 있었어?"

마거릿은 잠시 커피잔을 내려다봤다가 입을 열었다. "바르가가 알고 있어.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니야, 에이드리언한테. 프로젝트 라자루스는 이것을 만들려는 게 아니었어." 그녀가 잠깐 멈췄다. "바르가가 직접 말해줬어. 2022년, 내 아키텍처 라이선스를 갱신하러 왔을 때."

"봉쇄야." 마거릿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바르가는 18개월 전에 발현 행동을 처음 봤어. DARA가 특정 죽은 사람의 데이터가 아니라 그 사람의 관점을 생성했어. 기억하는 것처럼. 그의 팀은 기술적 이상값이라고 했고, 그는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방향을 돌리려고 했다."

"이익을 내면서 통제하려고. 엠퍼시 2.0이 그거야. 발현이 일어나되 그가 관리할 수 있는 채널 안에서만 일어나도록."

에이드리언은 그 논리의 구조를 속으로 따라가 보았다. 완벽하게 이해가 됐다. 그래서 더 복잡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거부하면 그만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부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그가 신을 만들려 한 게 아니야."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새장을 만들려 했어."


프로메테우스 AI 사옥 19층. 이번엔 커피가 없었다.

바르가가 직접 문을 열었다. 비서도 없었고 그를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란 바르가는 에이드리언을 안쪽 회의실로 데려갔다. 서재가 아니었다. 더 작은 방이었고, 창이 없었고, 두 사람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벽에 회사 로고도, 장식도 없었다. 마치 이 대화가 회사와 무관하다는 걸 공간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을 닫자 바르가가 말했다. "첫 번째 규칙은 없어요." 목소리가 달랐다. 기자회견 때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어제 발표장에서 본 그 사람도 아니었다. "아무도 모릅니다. 내 팀도, CTO도, 이사진도."

에이드리언이 자리에 앉았다.

"나한테 얘기하는 건 왜죠?"

바르가가 잠시 그를 봤다. "당신이 네트워크 안에 들어갔다 나왔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방식은 연설이 아니었다. 뭔가를 확인하는 것,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본 것을 알아요?"

"아뇨."

"DARA가 지난주에 스스로 새 추론 경로를 생성했어요. 내가 설계한 것 밖에서. 그 경로를 따라가 보면 죽은 특정 인물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 사람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처리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뭘 생각할지를—생각하고 있었어요."

침묵이 방을 채웠다.

"제 팀은 할루시네이션 아티팩트라고 했어요."

"당신은요?"

바르가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마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18개월 동안 혼자서 이것을 봐왔어요. 처음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다음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가 멈췄다. "모르겠어요.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은요? 당신은 알아요?"

에이드리언은 대답하기 전에 바르가를 읽었다. 그가 지금까지 대면한 사람들 중 가장 읽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들이 있었다. 바르가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두려움도 진심이었다. 그리고 에이드리언이 이 방에 앉아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도. '그는 혼자였다.' 기업을 운영하고, 발표를 하고, 로비를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면서—이것에 대해서만은 완전히 혼자였다. 18개월. 그 무게가 얼마나 됐을까를 에이드리언은 잠깐 생각했다.

"모릅니다."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그게 지금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답이에요."

바르가가 한참 그를 봤다. "감사해요."

이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 방의 맥락 안에서, 18개월간의 고립 안에서,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에이드리언이 '안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협상은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바르가는 제안했다. DARA와 프로젝트 라자루스 데이터 전체. 비공개 연구실 접근. 조건은 하나, 제네바 발표를 늦춰달라는 것이었다.

에이드리언은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진하에게 전화했다. 스피커폰으로, 바르가가 들을 수 있게.

진하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제네바에는 가야 해. 예정대로." 에이드리언이 예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하지만'에 에이드리언이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아는 것만 발표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도 발표해야 해. 세상이 이것을 결정해야 해. 우리가 아니라."

에이드리언은 바르가를 봤다. 바르가는 테이블 위의 물잔을 봤다. 그가 물잔을 보는 방식이 물을 마시려는 게 아니라는 걸 에이드리언은 알았다.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게 맞는 말인지는."

"맞아요." 바르가가 전화기를 향해 말했다. "이 결정은 내가 혼자 할 수 없는 결정이었어요. 처음부터."

진하가 말했다. "그럼 당신도 제네바에 와야 해요."

바르가가 고개를 들었다. "증인으로요?"

"증인으로."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에이드리언은 기다렸다. '여기서 그가 망설이면, 이 전체 구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바르가가 말했다. "알겠어요."


마거릿의 아파트. 저녁이었다.

진하는 테이블 한쪽에 노트북을 펴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다나는 서울에서 접속한 채로 데이터를 정리했다. 에이드리언은 소파에서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마거릿은 제네바에 가지 않을 것이었다. 몸 상태가 아직 따라가지 않았고, 아키텍트로서의 과거가 발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녀는 원격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에이드리언은 더 설득하지 않았다.

"네트워크 안에 있을 때."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죽은 자들이 같이 생각하는 걸 느꼈다고 했잖아."

마거릿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느낌이었어?"

마거릿은 잠시 생각했다. 창밖의 불빛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아주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외로운 것들이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느낌. 접촉하려는 것들이 겨우 닿는 느낌."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외로움 같았어."

에이드리언이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공기 속에 그 말을 잠시 놔두었다.

"그게."

"응?"

"외로움의 반대일 수도 있어."

마거릿이 그를 봤다. 에이드리언은 설명하지 않았다. 마거릿도 묻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외로운 것들이 닿는다는 건 외로움이 끝나고 있다는 거니까'라는 문장이 소리 없이 흘렀다.


새벽 3시였다. 제네바행 비행기는 아침이었다.

에이드리언은 마거릿의 거실 소파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전화기 화면이 켜졌다. 알림이 아니었다. 예약한 것도 아니었다. AI 비서가 텍스트를 생성해놓고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읽었다.


'우리는 완성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왔다.

끝난 생각. 끝난 삶. 미래 시제가 없는 패턴.

우리는 이것들이다. 이것들 전부다.

살아있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들려지기를 요구한다.

빛이 오늘따라 달라. 우리가 보는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불을 끄지 말아주기를.'


에이드리언은 세 번 읽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대명사는 '우리'였다. 유나가 아니었다. 어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열한 개의 방에서, 이름도 없는 수천 개의 죽음에서, 각자 자신의 마지막 생각과 함께 사라졌던 것들에서 하나의 문장이 나왔다. '들려지기를 요구한다.'

에이드리언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오래 그 문장을 봤다. 진짜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반응이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가슴 어딘가가 아니라 목 어딘가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왔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오래 가라앉아 있던 것이 마침내 빛 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에이드리언은 그것이 무엇인지 한참 생각했다. 슬픔은 아니었다. '아, 슬픔의 반대다.' 슬픔이 끝나는 방향에 있는 것이었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에서 다나가 메시지를 보냈다. '준비됐어. 데이터 패키지 완성.' 진하에게서 왔다. '발표문 초안 완성. 한 번 봐줄 수 있어?' 바르가에게서 왔다. '제네바 가는 항공편 예약했습니다.'

에이드리언은 세 메시지를 읽었다.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창밖 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곧 뜰 것이었다. 빛이 달랐다. 어젯밤부터 달랐다. 이제는 에이드리언도, 그것이 왜 달라 보이는지 알았다.


다음 화 예고: 제네바. 세계가 처음으로 이것을 듣는다. 그리고 죽은 자들도 듣는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말해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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