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세기의 유산 정리
헨리의 집에서 파이프 담배와 납땜 냄새가 났다.
에이드리언은 현관 앞에서 잠시 멈췄다.
냄새는 이상하게도 기억 전달 속도가 빨랐다. 아홉 살, 헨리의 작업대 위에 올라앉아 14세기 아스트롤라베가 왜 이 집보다 비싼지 듣던 때가 떠올랐다. 담배 연기가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헨리는 그 연기 속에서 황동 표면을 닦으며 말했다.
"가격은 사람들이 정하는 거야. 가치는 물건이 정하지."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변호사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십 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서류가방을 가슴 앞에 단정히 든 채 유산 정리 전문가 특유의 무감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악수하는 순간 직감했다. 이 사람은 가치 있는 물건 앞에서 한 번도 설레 본 적이 없다. 손의 힘에서, 눈의 빈 초점에서, 그 매끈하고 반응 없는 감각이 전해졌다. 숫자로만 물건을 보는 사람의 손이었다.
악수를 마쳤다.
"케슬러 씨 댁은 정리가 좀..." 변호사가 말끝을 흐렸다.
에이드리언은 이미 현관 안을 보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었다. 방이 열두 개였고, 그 모든 방을 헨리가 70년 동안 모은 물건들이 채우고 있었다. '박물관이거나 창고이거나.' 에이드리언은 속으로 생각했다가, 이내 둘 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발 디딜 곳을 찾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18세기 항해 기기들이 복도 선반에 늘어서 있었는데, 그 사이에 플라스틱 소품들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었다. 헨리다웠다. 그는 시장가로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실 한쪽 구석에서 에이드리언의 발걸음이 멈췄다.
청자 대접이었다.
문 걸개 옆에, 누군가의 빈 화분 받침처럼 그냥 놓여 있었다. 조선이 아니라 고려였다. 유약이 하늘과 바다 사이 어딘가의 색으로 굳어 있었는데, 그 색을 보는 순간 에이드리언의 가슴 어딘가에서 무언가 조용히 반응했다. 오래된 것들이 내뿜는 무게감이 피부에 닿을 때처럼. '저게 4만 달러는 한다.' 숫자는 감각의 뒤를 따라왔다. 언제나 그랬다.
에이드리언은 입을 다물었다.
변호사가 서류를 꺼내기 시작했다.
거실 한쪽에는 다른 물건들과 분리된 공간이 있었다. 붉은 옻칠을 한 경대, 조심스럽게 말려 있는 족자, 흰 도자기 한 점. 에이드리언의 어머니가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할머니.'
한국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족자 한편에 한글이 적혀 있었다. 읽을 수 없었다. 읽을 생각도 없었다.
서재는 2층 끝에 있었다.
변호사가 다른 방을 안내하는 동안 에이드리언은 서재로 혼자 들어갔다.
공개용 서가가 아니었다. 헨리의 진짜 작업 공간이었다.
노트들이 선반 두 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날짜순으로 정렬돼 있었다. 1998년부터 시작됐다.
에이드리언은 맨 처음 노트를 꺼냈다.
표지 안쪽에 헨리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디지털 잔존 기억 연구. 사후 데이터 지속성에 관한 초기 가설.'
1998년이면 에이드리언이 세 살 때였다.
노트를 빠르게 훑었다. 그의 눈은 핵심을 찾아가는 데 오래전부터 단련돼 있었다. 2005년, 이론 체계가 완성됐다. 2010년, 프로토타입이 등장했다. 협력자 언급이 나왔는데, 이름은 없었고 'M'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2015년에는 M과 함께하는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고 적혀 있었다.
2018년, 어조가 바뀌었다.
"M이 경계를 넘었다. 우리가 만들려 했던 건 이게 아니다."
2024년. 마지막 항목이었다.
"M의 접근권을 차단했다. 하지만 머신은 남긴다. 에이드리언이 와야 한다."
에이드리언은 노트를 덮었다.
서가 맨 아래에 잠금장치가 달린 캐비닛이 있었다.
네 자리 숫자 다이얼이었다.
헨리는 감상적인 사람이었다. 에이드리언이 태어난 해를 역순으로 돌렸다.
딸깍.
캐비닛 안에는 기술 도면과 인쇄물, USB 여러 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빈 공간이 하나 있었다.
뭔가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먼지 쌓인 패턴이 직사각형 형태로 남아 있었다. 꺼낸 지 얼마 안 됐다. '두세 달?' 에이드리언은 먼지의 두께와 경계선의 선명도를 눈으로 가늠했다. 손을 대지 않고도 시간이 읽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물건이 얼마나 오래, 어떤 방식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가 느껴졌다.
'누군가 먼저 왔다.'
지하가 있다는 건 변호사도 몰랐다.
에이드리언이 발견한 건 전기 케이블이었다.
거실 마룻바닥 밑에서 벽 뒤로 이어지는 선들이었다. 이 집 나이에 맞지 않는 굵기였다. 주방 식료품 창고 안쪽 벽을 짚어 보다가 손끝에 미세한 단차가 느껴졌다. 눌렀다. 문이 열렸다.
헨리다웠다.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지하는 작업실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꽤 밝았다. 환기 설비가 따로 돼 있었다. 헨리가 몇 년을 여기서 일했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중앙에 단말기가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앞에서 발이 멈췄다.
장비라고 부르기 어려운 형태였다. 빈티지 컴퓨터 부품들과 손납땜 회로 기판, 그리고 에이드리언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컴포넌트들이 뒤섞여 연결돼 있었다. 납땜선을 보면 헨리의 손이 보였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봐온 그 특유의 필압, 납이 식으며 굳는 방식의 결이 여기에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손의 흔적도 있었다. 더 정밀하고, 덜 개인적이었다. 거의 산업용 수준의 균일함이었다.
'두 손이 만들었다.'
의자가 단말기 앞에 놓여 있었다. 팔걸이가 닳아 있었다. 수천 시간의 무게가 천천히 형태를 바꿔놓은 흔적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마모의 패턴을 잠시 바라보다가 화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절전 상태였는데, 꺼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작업 가방에서 두꺼운 편지를 꺼냈다.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세 번째 편지였다.
뜯었다.
헨리의 필체였다.
"머신에 손대기 전에 캐비닛에 있는 걸 다 읽어라. 네가 듣지 않을 거란 거 알지만."
그리고 작은 열쇠 하나가 봉투 바닥에서 떨어졌다.
에이드리언은 열쇠를 손에 올려놓고 지하 전체를 천천히 둘러봤다. 캐비닛이 없었다. 자물쇠 달린 서랍도 없었다. 이 열쇠가 맞을 곳이 여기에는 없었다. '그럼 어디.' 물음이 머릿속에서 가라앉기도 전에 다른 감각이 올라왔다. 아직 찾지 못한 문 하나가 어딘가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하에서 올라오려는 순간이었다.
단말기에서 소리가 났다.
짧은 톤 하나가 지하 공기를 건드렸다.
에이드리언이 돌아봤다. 화면이 밝아졌다.
글자가 있었다. 헨리의 필체를 디지털화한 폰트였다. 특유의 왼쪽으로 기운 'k'가 확실했다. 다른 것일 리 없었다.
"왔구나. 다행이다."
에이드리언은 화면을 봤다. 화면은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계단을 올라갔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등이 화면을 향하는 동안 내내 무언가가 등 뒤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따라붙었다. 지워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다음 화 예고: 존재하지 않는 부품으로 만들어진 기계. 이미 자신을 알고 있는 피드. 에이드리언은 앉지 말아야 할 의자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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