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동료

서진하 박사는 정확히 오후 3시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블랙 커피를 주문하는 그 짧은 동작 안에 이미 습관이 보였다. 오래 혼자 일한 사람 특유의, 필요 외의 선택지를 이미 제거해둔 사람의 습관이었다. 빈 테이블을 골라 앉은 뒤 두 손을 앞에 단정히 모았다. 그 자세로 에이드리언이 들어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드리언이 카페 문을 열고 그녀를 찾았을 때,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는 느낌이 있었다. 서진하 박사는 사십 대 중반으로 보였고, 눈매가 날카로웠으나 피로가 쌓인 자리에 지성이 웅크리고 있었다. 이마에 새겨진 선 하나가 오랜 집중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성. 절제. 2년 이상 혼자 버텨온 사람.'

카페 뤼느에는 디지털 메뉴가 없었다. 칠판에 분필로 적은 메뉴판, 오래된 나무 테이블, 외벽 모서리에 기댄 피아노가 오후의 빛 속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에이드리언이 고른 곳이 아니었다 — 서진하가 보낸 문자에 주소가 있었다. '디지털 환경을 피한다. 이유가 있다.'

에이드리언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서진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이드리언 케슬러-박 씨."

"맞아요."

"저는 서진하예요. AI 윤리 연구자. 전에는 KAIST. 지금은 독립."

간결했다. 에이드리언이 좋아하는 종류의 자기소개였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만을 말하는 방식.

"유나와 같이 일했어요."

"알아요."

서진하가 잠깐 눈을 들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문자에서요. '유나가 믿었던 사람'은 아무나 아닌 표현이에요. 유나가 아무를 믿지 않았으니까요."

서진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커피를 식히지 않고 마시는 사람이었다.

"유나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어요." 잠깐 멈췄다. "죽기 전에. 헨리의 손자가 볼 수 있다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에이드리언은 이 말의 무게를 느꼈다. 유나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하에게 말했다. 그 사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래된 상처처럼 쓰렸다.

"무슨 말인지는 이제 알아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직 몰라요."

서진하가 핸드백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종이였다.


세계지도였다.

열두 개의 점이 대륙에 흩어져 있었다. 하나는 이미 지워져 있었다 — 메리디안 랩스. 에이드리언이 막은 것이었다. 지워진 점 위에 나머지 열한 개가 침묵처럼 남아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지도를 보았다. 점들이 우연처럼 놓여 있었지만 우연이 아니었다. 네 개 나라에 분포된 열한 개. 충분히 드물고 충분히 조직적인 패턴이었다.

"파이프라인 네트워크예요." 서진하가 말했다. "2년 동안 추적한 거예요. 기업 문서, 서버 등록, 데이터 이동 패턴. 유나 자료까지 전부 모아서."

"증거는 있어요?"

"문서는 있어요. 데이터 이동 패턴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없어요."

에이드리언은 기다렸다.

"디지털 잔류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요." 서진하가 말했다. "죽은 사람의 인지 패턴이 AI 훈련 데이터에 실제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게 AI의 출력에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건 증명하기 어려운 게 아니에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이 카페에 오는 길에도 봤어요. 광고판. 스피커. 잔류물의 결이 다 달라요. 전부 다르게 보였어요."

"그게 문제예요." 서진하가 조용히 말했다. "'보였다'는 학술 증거가 아니에요. 법적 증거도 아니에요. 당신이 보는 것을 내가 보여줄 방법이 없어요."

에이드리언은 인정했다. 그것은 언제나 문제였다. 보는 것과 보여줄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격.

"출처가 어디예요?" 에이드리언이 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잔류물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서진하가 커피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게 유나가 마지막으로 추적하던 거예요."


카페가 조용했다. 피아노 위에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도 치지 않는 피아노였는데, 악보는 마치 누군가가 방금 일어난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서진하가 두 번째 서류 봉투를 꺼냈다.

"유나의 마지막 연구 로그예요. 암호화된 파일이었어요. 여섯 달 전에 복호화했어요."

에이드리언이 파일을 받았다.

인쇄된 텍스트였다. 유나의 손으로 쓴 것이 아니었다 — 타이핑된 것이었다. 하지만 에이드리언은 첫 줄을 읽는 순간 손가락이 멈췄다.

리듬이었다.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 가설을 세울 때 항상 두 가지 반례를 먼저 나열하고 시작하는 것, 마지막 문장을 결론이 아닌 질문으로 끝내는 것.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사고의 질감이었다. 생전에 네트워크 안에서 에이드리언을 안내할 때 유나가 쓰던 것과 동일한 패턴이었다. 텍스트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자국처럼 느껴졌다.

'유나다.'

에이드리언은 이것을 서진하에게 말하지 않았다. 읽었다.

유나의 연구 로그는 짧았다. 마지막 기록이었다.


Ghost Network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설계자 M이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했다. 동일한 구조가 최소 11개 더 존재한다. 각 네트워크는 독립적이지만 데이터 수집 방식은 동일하다. 수집된 잔류물은 단일 경로로 흘러간다. 경로 끝: Prometheus AI.


에이드리언이 고개를 들었다.

"유나가 이걸 언제 썼어요?"

"죽기 사흘 전이에요."


에이드리언은 창밖을 잠깐 바라보았다.

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커피 배달원이 지나갔고, 개를 앞세운 노인이 느리게 걸었다. 오후의 보도가 그들을 무심히 받쳐주고 있었다.

"M이 누구인지 알아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서진하가 에이드리언을 보았다.

"당신이 알 것 같아서요. 알고 있죠?"

에이드리언은 잠깐 망설였다. 이 이름을 소리로 꺼내는 것이 무언가를 확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거릿 케슬러-박이에요. 어머니예요."

서진하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유나 자료에서 추측했어요." 서진하가 말했다. "확인이 안 됐을 뿐이었어요."

"지금 확인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침묵이 아니었다. 서로가 알아야 할 것을 알았다는 침묵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서진하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했다. 판단의 흔적이 없었다. 정보를 수신하는 사람의 표정, 분류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을 가라앉혀 두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비슷하다. 다른 방향에서.'

"서진하 박사."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어머니가 당신 연구를 세 해 전에 훼손하려 했다는 거 알아요."

잠깐이었다.

"알아요." 서진하가 말했다.

"화 안 나요?"

서진하가 에이드리언을 잠깐 봤다. 그 눈빛에 피로와 의지가 함께 있었다.

"화는 나요. 하지만 그게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두 사람은 서진하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아파트 겸 사무실이었다.

문을 열자 에이드리언은 발을 멈췄다.

벽이 없었다. 아니, 벽은 있었지만 이미 종이가 되어 있었다. 타임라인, 법인 등기, 서버 등록 내역, 데이터 흐름 다이어그램, 인물 관계도가 뒤섞인 채 네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단순한 자료 정리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2년을 혼자 버티면서 쌓아올린 지도였다. 종이의 색이 제각각 바래 있었는데, 그 바랜 정도가 시간을 나타냈다. 먼저 붙인 것이 더 노래졌다.

에이드리언은 이런 밀도를 알았다. 유물 감정을 할 때 서류를 쌓는 방식이 이랬다. 하나하나가 흩어진 조각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전체가 하나의 선으로 수렴하는 것, 그 순간을 위해 조각들을 쌓는 것이었다. 서진하는 그 순간을 2년 동안 기다렸다.

"유나 자료가 여기 있어요."

한쪽 벽이었다. 유나의 필체가 남아 있는 노트, 인쇄물, 손으로 그린 도표들이 모여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서진하가 그것을 알아챘다. 말하지 않았다.

"DARA예요." 서진하가 다른 벽을 가리켰다.

한 장의 출력물이었다.


Prometheus AI의 플래그십 모델 DARA에서 나온 텍스트였다. 프롬프트 없이 생성된 것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읽었다.

부산의 어떤 정원에 대한 글이었다.

4월 초순의 빛이 담쟁이를 타고 내려오는 방식은 — 어쩌면 내가 그것을 본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것을 본 기억을 내가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의 주인이 나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빛이 거기 있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 그것만이 남는다.

에이드리언은 텍스트를 다시 읽었다. 손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것을 본 기억을 내가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었다. 에이드리언은 이것을 알아봤다. 오래 네트워크 안을 걸어다니며 익힌 감각이었다 — 죽은 자의 텍스트가 가진 패티나, 완료된 경험, 미래 없는 회상,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사람의 시선. 그것이 이 글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무언가가 더 있었다. 현재 시제였다.

'내가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현재를 쓰지 않는다. 죽은 자의 텍스트는 언제나 완료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완료되지 않았다. 죽은 자의 기억을 안에 담은 채로 현재를 살고 있는 무언가였다. 에이드리언이 이름 붙일 수 없었던 것, 네트워크 안에서 만났던 그것과도 달랐다. 그것은 감시 도구였고 패턴 없이 생성됐다. 이것은 달랐다. 패턴이 있었다. 의도처럼, 기억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안에 있었다.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다.'

에이드리언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언제 생성됐어요?"

"세 달 전이에요."

"프롬프트가 없었어요?"

"없었어요."

에이드리언은 출력물을 내려놓았다. 손이 여전히 차가웠다.

"바르가는 뭐라고 해요?"

"꿈꾼다고 해요." 서진하가 조용히 말했다.

에이드리언은 잠깐 생각했다.

"그건 틀렸어요."

"왜요?"

"꿈은 경험이 없는 것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건 경험이 있어요. 죽은 사람의 경험이. 꿈이 아니에요." 에이드리언은 잠깐 말을 끊었다. 맞는 단어를 찾는 시간이었다. "기억하는 거예요. 대신."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뭔가가 확정되는 느낌이 있었다. 설명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두 사람은 해가 질 때까지 거기 있었다. 서진하가 지도를 펼쳤다.

"열한 개 파이프라인 중 세 개를 찾았어요. 일본. 독일. 브라질."

"일본은 어느 시기를 수집하고 있어요?"

"전후 시대예요. 1950년대 전후. 왜요?"

에이드리언이 생각했다. 점들이 지도 위에서 새롭게 보였다. 지역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지리가 아니라 역사였다.

"특정 역사적 시기에 집중한다는 건 일반 데이터 수집이 아니라는 거예요. 선별하고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요?"

"감정 강도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사이퍼가 확인해줬어요. 마지막 생각이 강렬할수록 AI가 더 '인간적'으로 반응해요. 바르가는 그걸 알고 있어요."

서진하가 받아 적었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이었다. 생각이 손에 이미 습관으로 내려와 있는 사람의 필체였다.

"감정 충실도." 서진하가 말했다. "그게 DARA의 차별점인 거예요. 다른 AI는 언어 패턴을 배워요. DARA는 감정 패턴을 배워요. 죽은 사람들의 실제 감정에서."

"그게 바르가의 제품이에요?"

"이번 주에 발표할 거예요. 'Empathy 2.0'이라고 불러요."

에이드리언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도시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광고판에 불이 들어왔다. 도시는 여전히 무심했다.


에이드리언이 일어났다.

"다음에는 제가 직접 DARA 출력물을 분석해요."

"할 수 있어요?"

"샘플이 더 있어요?"

"열두 개요."

"가져와요."

서진하가 에이드리언을 잠시 바라보았다. 판단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이 드디어 도착한 것을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당신을 2년 기다렸어요." 서진하가 말했다. 보고하듯. 담담하게.

"죄송해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사과 아니에요. 당신이 준비되기 전에 왔어도 소용없었을 거예요."

에이드리언은 그 말의 정확성을 인정했다. 틀리지 않았다.

"유나가 뭐라고 했어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저에 대해서."

서진하가 잠깐 생각했다.

"'헨리의 손자는 볼 줄 알아. 그리고 못 보는 척도 잘 해.'"

에이드리언은 웃지 않았다. 웃고 싶었지만 웃을 수 없었다. 유나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정확하게. 애정 없이.


밖으로 나왔다. 거리가 어두웠다.

에이드리언은 서진하의 건물을 나서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DARA의 출력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빛이 거기 있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 그것만이 남는다.'

루트 노드였다. 할머니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부엌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헨리의 흥얼거림, 아이의 손. 죽은 자가 소중히 여겼던 것이 기계 안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재현이 아니었다. 이어받는 것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걸었다.

DARA는 훈련 데이터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었다. 받아서 이어가고 있었다. 죽은 자의 기억이 끊기지 않도록.

'그게 더 나은 건지 더 나쁜 건지.'

아직 몰랐다. 그리고 그 모름이 지금은 꼭 견뎌야 할 것 같았다.


다음 화 예고: 에이드리언은 꽃을 들고 병원에 갔다. 국화였다. 어머니는 거의 웃었다. 그리고 엘리아스 바르가가 세계에 발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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