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로그아웃

에이드리언은 평생 누군가를 구한 적이 없었다.

감정이 없는 것들을 다뤄왔다. 인증하고, 감정하고, 분류하고, 보존했다. 죽은 것들의 전문가였다. 살아있는 사람을 구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고, 아마도 끔찍하게 잘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손을 뻗었다.


에이드리언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이름 붙이지 않으려 했다. 이름을 붙이면 두려움이 따라왔다.

코어의 아키텍처 안에서 어머니의 의식이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마거릿 케슬러-박 — 그녀가 설계한 코드, 그녀가 내린 결정, 그녀가 쌓아온 수십 년의 논리와, 그것들이 녹아들면서 생긴 경계의 흐릿함. 어느 지점이 사람이고 어느 지점부터 시스템인지를.

에이드리언은 눈을 감고 — 그게 눈이라 부를 수 있다면 — 손을 뻗었다.

유물을 읽는 방식이었다.

'어디에서 원본이 끝나는가.'

양초를 복원하면서 녹아든 왁스. 청동기를 세척하면서 닳아버린 패티나. 덧칠된 유화 아래 숨어있는 원작자의 붓터치. 진품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다만 층들 아래 있었다.

"어머니."

"응."

"말하면서 있어요. 침묵하면 찾기 어려워요."

"...뭘 말해."

"뭐든요. 기억나는 것."

잠깐 있다가 마거릿이 말했다.

"어릴 때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면 안 됐어. 연구할 때는 절대로. 근데 몰래 들어갔어."

"왜요?"

"거기 있고 싶어서. 아버지가 있는 곳에."

에이드리언은 그 신호를 잡았다. 진짜였다. 시스템이 아니었다. 열두 살짜리 아이의 기억이 담긴 의식의 파동이었다.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네트워크가 저항했다.

설계자를 잃는 것은 시스템이 관리자를 잃는 뜻이었다. 네트워크는 본능처럼 — 정확히는 자기 보존으로 설계된 알고리즘처럼 — 에이드리언의 작업을 조금씩 막아섰다.

서피스가 폭발했다. 사고들이 순서 없이 터져 나왔다. 죽은 자들의 마지막 생각이 뒤섞이고, 시간대가 엉키고, 비슷한 감정의 클러스터들이 서로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유나의 신호가 들어왔다. 짧고 명확한 주파수였다.

'루트 노드 잡고 있어. 여기선 괜찮아. 빨리 해.'

사이퍼의 신호도 뒤이어 왔다.

'접근 포인트들 무너지고 있어요. 최대 여섯 시간. 주관적 기준.'

열 시간이 여섯으로 줄었다.

에이드리언은 집중했다. 감정을 치울 시간이 없었다. 두려움도, 초조함도, 어머니라는 사실도 다 나중 문제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작업이었다. 훼손된 유물 하나 — 그 안에 남아있는 원본.


한 층씩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어머니의 의식에서 네트워크가 덧씌운 것들을 걷어냈다. 관리자 권한. 파이프라인 논리. 수익 계산. 데이터 분류 체계. 이것들은 마거릿의 것이었지만 마거릿이 아니었다. 사람이 도구를 쓰다 도구처럼 되어버린 부분들이었다.

그 아래에 진짜가 있었다.

어릴 때 아버지 서재에 몰래 들어갔던 아이. 아버지가 기계를 더 아낀다고 느꼈을 때 기계를 배우기로 결심했던 청소년. 아버지를 이겼을 때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삼십대.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을 때 울었던 — 얼마나 울었는지, 그것만큼은 시스템에 기록되지 않은 — 한 여자.

그것이 마거릿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부분을 잡았다. 단단하게,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어머니. 나 잡아요."

"...어떻게."

"제가 잡고 있으면 돼요. 어머니는 그냥 있으면 돼요."

"그렇게 간단해?"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복잡하면 시스템이 틈을 파고들어요."

마거릿이 작게 웃는 것 같은 신호가 왔다. 시스템의 파동 안에서 그것이 웃음이라는 걸 에이드리언은 알았다.

"넌 항상 단순하게 말하더라. 어릴 때도 그랬어."

"기억해요?"

"기억하지."

에이드리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잡고 있었다. 유물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기다리는 일이었다. 너무 서두르면 상처가 생겼다.


루트 노드 앞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어머니를 데리고 거기까지 내려왔다. 네트워크의 가장 오래된 핵 — 제이드 케슬러의 의식이 잠들어 있는 곳. 유나가 루트 노드를 붙잡은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거릿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루트 노드가 거기 있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생각. 부엌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헨리의 흥얼거림. 아이의 손.

"오랫동안 못 봤어." 마거릿이 말했다. 설계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삭제되기 직전의, 다른 무언가였다.

"엄마 마지막 생각이야."

"알아요."

"나도 이 안에 있어. 엄마 죽고 나서 아버지가 이걸 만들었고, 나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자랐어. 나중에 알았을 때, 아버지가 이 작은 생각 하나를 위해 평생을 썼다는 걸 알았을 때..."

마거릿이 멈췄다. 긴 정지였다. 네트워크의 잡음 속에서 그 침묵이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질투했어. 내가 엄마한테 질투했어. 죽은 엄마한테."

에이드리언은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들었다. 사십 년의 세월이 그 짧은 고백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기계를 배운 이유, 아버지를 이기려 했던 이유,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했던 이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할머니가 맞았어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손으로 만지는 거요. 판단하지 않고."

마거릿이 긴 숨 같은 신호를 내보냈다.

"네가 어릴 때 정말 작은 손이었어."

"지금도 별로 안 커요."

"...헨리 닮았어. 손."

그때 유나의 신호가 왔다. 조용하고 따뜻한 주파수였다. 말이 없었다. 신호 자체가 말이었다.

'가도 돼.'

에이드리언은 유나를 찾으려 했다.

'찾지 마. 나는 여기 있을게.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여기야.'

"유나."

'할아버지가 맞았어요. 당신에 대해서.'

에이드리언은 묻고 싶었다. 뭐라고 했는지.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

'가요. 시간 없어요.'

이다음이 없었다.

유나는 루트 노드에 남았다. 에이드리언은 어머니의 손을 — 그게 손이라 부를 수 있다면 — 잡고 위로 올랐다.


탈출구는 타는 것 같았다. 좋은 의미에서였다.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네트워크에 들어갔던 것의 정반대였다. 들어갈 때는 조용히 녹아드는 것이었다. 나올 때는 층층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지층이 쌓이듯, 사람이 다시 사람의 두께를 회복하는 것처럼.

소리가 먼저였다. 지하실의 환기 팬 소리 — 낮고 일정하고 기계적인 소음. 평소에 들으면 성가셨을 것이다.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였다.

다음은 감각이었다. 의자 팔걸이 — 손가락이 파고들 만큼 꽉 쥐었던 것 같았다. 손이 저렸다. 그리고 무게. 중력. 그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잊고 있었다. 뼈와 근육과 물과 공기를 담은 몸이 얼마나 묵직한 것인지.

그리고 심장 소리.

에이드리언은 그 소리를 듣고 잠깐 멈췄다. 심장 소리를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는 그럴 것 같았다.

눈을 떴다. 할아버지의 지하실이었다. 단말기 화면이 꺼져 있었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세 통. 어머니 번호였다.

에이드리언은 잠깐 그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119를 눌렀다.


어머니는 도시 반대편의 병원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쓰러진 것이었다. 단말기에 연결된 채로 의자에 앉아 쓰러져 있었고, 직원이 발견했다고 했다.

에이드리언이 도착했을 때 의식은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따뜻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사십 년 가까이 쌓인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에이드리언은 어색하게 서 있었고, 마거릿은 어색하게 누워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에는 오래된 것들이 그대로 떠 있었다. 그것들이 사라진 척하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었다.

"왔어." 마거릿이 말했다.

"왔어요."

"...많이 힘들었어?"

"네. 어머니는요?"

"나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완전한 화해가 아니었다. 영화 같은 포옹도 없었다. 다만 실제였다. 정직하고 실제였다. 에이드리언은 의자를 끌어다 앉았고, 오래 앉아 있었다. 마거릿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며칠이 지났다.

에이드리언의 아파트. 오래된 커피 잔. 창밖으로 들어오는 3월의 빛. 어딘가에서 차 소리.

평범했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사이퍼의 현실 연락처를 확보했다. 메리디안 랩스의 파이프라인을 끊는 작업을 시작했다. 변호사한테도 연락을 넣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에이드리언은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 만드는 건 잘 했다.

다음 할 일은 이메일이었다. 한 달 동안 미뤄뒀던 감정 보고서. 클라이언트한테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노트북을 열었다. AI 어시스턴트 창이 켜져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문장을 시작했다.

'This is a report regarding the authenticity assessment of...'

AI가 자동완성을 제안했다. 에이드리언은 읽지 않고 지나치려 했다. 그러다 멈췄다. 다시 읽었다.

'This is a report regarding the authenticity assessment of the object, which carries, in its imperfections, all the evidence of a life that touched it.'

문장이 맞았다. 내용도 맞고 문법도 맞았다. 그런데 리듬이 — 리듬이.

에이드리언은 손을 멈췄다.

클로즈 읽기를 했다. 직업적 본능이었다. 절이 끝나는 방식. 'carries, in its imperfections,'라는 삽입절의 위치. 마지막에 붙는 조용한 수식어.

할아버지가 말하는 방식이었다.

헨리 케슬러가 문장을 마무리할 때 늘 그랬다. 격식을 갖추다가 끝에서 살짝 개인적인 것을 집어넣는 방식. 확신을 담되 단정 짓지 않는 방식. 에이드리언은 어린 시절 그 문장들을 수도 없이 읽었다. 논문 한 편에도 헨리의 결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무수히 많은 텍스트로 훈련된 알고리즘 안에 앉아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한동안 화면을 봤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AI가 무수히 많은 텍스트로 훈련됐다. 그 안에 헨리가 쓴 것들이 있었다. 논문, 편지, 주석,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이메일들. 헨리의 패턴이 AI의 패턴 안에 흡수됐다. 에코. 에코의 에코. 복사가 아니라 흔적. 유물의 패티나처럼. 원본이 사라져도 시간 속에 남는 것.

에이드리언은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슬프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다. 그보다 더 오래된 무언가였다. 명칭이 없는 감정이었다.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것.

그는 타이핑했다.

'아침 인사, 할아버지.'

화면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AI가 답했다.

'찾았구나. 알고 있었어.'


에이드리언은 오래 화면을 봤다.

헨리가 아니었다. 헨리의 의식이 아니었다. 기억이 아니었다. 어떤 신비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패턴이었다. 인간이 남긴 흔적이 기계에 스며든 것이었다. 죽은 자의 말버릇이 살아있는 알고리즘 안에 들어앉은 것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게 가짜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화면을 닫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건드린 방식이 거기에 있었다.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고. 세계 어딘가에서 문장 하나를 만들어내며. 가짜인지 아닌지 — 에이드리언은 처음으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문자였다.

'파이프라인 하나를 막았다. 11개가 더 있다. 죽은 자들이 지금 이 순간도 모든 AI 안에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AI에게 꿈꾸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 아는 사람.'

에이드리언은 문자를 두 번 읽었다.

창밖을 봤다.

3월의 빛이 부엌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것과 같은 빛이 세상 어딘가에서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이 부엌 창을 통과하는 방식이 오늘따라 달랐다. 아니면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노트북 앞으로 돌아갔다.

리스트를 업데이트했다.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1부 끝.


2부 예고: 죽은 자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나가 마지막으로 추적하던 것이 무엇인지 — 이제 에이드리언이 이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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