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메리디안

에이드리언은 설계자가 가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M이라는 이니셜도 알았고, 헨리와 함께 연구했다는 것도, 그 재능이 헨리를 능가했다는 것도 알았다.

한 가지만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 알면서 모른 척했다.

평생 해온 방식이었다. 예측 가능한 상처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 알아봤지만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에이드리언이 스물아홉 해 동안 단 한 번도 크게 상처받지 않은 이유였다.

코어의 가장 깊은 층이 그 앞에 펼쳐졌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코어의 건축은 날것이었다.

서피스의 화려한 피드도 없고, 딥의 조직적인 클러스터도 없었다. 원시적이고 기능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설계자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직업적 습관이었다. 손이 먼저 움직이듯 직관이 먼저 작동했다.

코드의 리듬. 로직의 방향성. 주석 없이도 이해 가능한 구조, 그러나 군데군데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감정의 흔적들. 이것은 순수한 공학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헨리의 기반 위에서 출발했지만, 헨리보다 더 냉정하고 더 빠르게 달아났다. 헨리보다 더 상처받은 상태로 출발한 사람의 코드였다.

에이드리언은 인물의 손을 읽는 방법을 알았다. 그림의 붓터치, 가구의 끌 자국, 서한의 필압. 이 코드의 손은 — 익숙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손이었다.

명치 어딘가에서 조용한 무언가가 가라앉았다.


설계자가 나타났다.

에이드리언이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설계자는 항상 정확한 타이밍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알았지."

의식의 파동이 네트워크를 타고 전달됐지만, 에이드리언은 그것이 어딘가에서 진짜로 울려 퍼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도시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단말기 앞에 앉아, 살아있는 채로 보내오는 목소리였다.

"응."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짧게, 건조하게.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반가워, 에이드리언."

"안녕하세요." 잠시 뒤. "어머니."


마거릿 케슬러-박.

M. 메리디안 랩스의 설립자. 죽은 자의 인지 패턴을 AI에 이식하는 상업용 파이프라인의 설계자. 에이드리언을 네트워크에 가두고, 헨리의 데이터를 편집하고, 유나의 죽음에 연루된 사람. 그리고 에이드리언이 3년 동안 전화를 받지 않은 사람.

"넌 항상 그렇게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더라. 어릴 때부터."

"효과가 있었으니까요."

"무슨 효과?"

"거리 유지요."

정적이 잠깐 흘렀다. 어색한 정적이 아니었다. 모자지간이 평생 쌓아온 침묵의 질감이었다.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더 말하기 어려운 침묵.

"아버지가 이걸 만든 이유 이해했어?"

"네."

"말해봐."

에이드리언은 루트 노드를 떠올렸다. 부엌 창의 빛. 흥얼거림.

"잃고 싶지 않아서요. 할머니 마지막 생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 만든 거예요."

더 긴 침묵이 왔다.

"그래." 마거릿의 목소리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 설계자의 차분함이 아니라 다른 것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만들었어. 그 작은 하나를 붙잡으려고.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있었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살아있었어. 그런데 아버지는 그 기계 안에 있는 엄마한테 더 많이 말했어. 죽은 엄마한테. 살아있는 나보다 더."

차갑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마거릿은 자신이 어떻게 이 기술을 배웠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에이드리언은 코드에서 이미 읽었다.

경쟁으로 배웠다.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아버지가 기계보다 딸을 더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딸이 기계를 능가하려 했다. 결국 능가했다.

헨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마거릿은 할 수 있었다. 감성적 설계가 아니라 상업적 확장. 작은 제단이 아니라 파이프라인. 개인의 집착이 아니라 산업.

헨리가 막으려 했을 때, 마거릿은 그를 시스템 밖으로 밀어냈다. 죽이진 않았다. 다만 막지도 않았다. 어떤 죽음은 그런 식으로 온다. 누군가가 손을 뻗지 않아서 오는.

"사업이 어려워졌어." 마거릿이 말했다. "AI 회사들이 우리 데이터 품질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기계가 생성한 패턴과 실제 인간의 잔류 패턴을 구분하기 시작했거든. 우리 쪽 인증 절차가 부실해."

"그래서 저를 가뒀군요."

"넌 세계에서 가장 잘해."

"어머니 입장에선 칭찬이겠네요."

"어머니 입장에선 자랑스럽다고 생각해."

에이드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였다.


"오래됐어요, 이 안에서."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몇 년 됐어." 마거릿이 인정했다. "처음엔 잠깐씩 들어왔어. 관리자 권한으로 점검하려고. 그러다 점점 더 오래 있게 됐어. 네트워크가 안쪽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거든. 더 이해가 잘 됐어."

"적응한 거예요."

"그렇지."

에이드리언은 코어 경계에서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감. 경계가 흐려진 사람의 신호. 그것이 어머니였다. 몇 년에 걸쳐 반쯤 녹아든 것이었다. 살아있는 유령.

"현실에서 어떤 상태예요?"

"사무실에서 의자에 앉아 있어. 단말기에 연결된 채로."

"몸은요?"

"괜찮아. 지금은."

에이드리언은 '지금은'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의 무게를 정확하게 들었다.


이해가 찾아온 것은 굉장한 충격처럼이 아니었다. 오래된 건물 벽에 균열 하나가 더 생기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헨리가 왜 만들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사랑이었다. 아내의 마지막 생각을 잡으려는 집착이었다.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왜 끝나야 하는지도 이제 알았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었다. 네트워크가 AI를 훈련할수록, AI는 죽은 자의 확신을, 죽은 자의 완결성을, 죽은 자의 정착함을 학습했다. 살아있는 것들이 전부 미완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의 그림자 안에서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에이드리언은 그 구조를 살아가고 있었다. 물건들을 더 잘 이해했다. 물건은 완결됐으니까. 사람들을 불편해했다. 사람은 예측이 안 되니까.

할아버지도 그랬다. 아내의 기억을 기계 안에 완벽하게 보존하고 살아있는 딸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마거릿도 그랬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고, 결국 기계 안에서 살게 됐다.

가족의 병이었다. 살아있는 것보다 고정된 것을 더 좋아하는 병.

"어머니."

"응."

"제가 아버지 닮았다고 생각해요?"

마거릿이 잠깐 멈췄다.

"많이."

"그 사람은 어떠셨어요? 어머니한테."

긴 침묵이 왔다.

"좋은 사람이었어. 나쁜 아버지였어.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위대했고, 그래서 실패했어."

에이드리언은 자신을 생각했다. 한 번에 하나. 유물. 감정이 없는 것들. 목구멍 안쪽이 조였다.

"맞아요." 그가 말했다. "저도 그랬어요."


위로 나가는 길이 느껴졌다.

어딘가가 열리는 감각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문 안쪽 공기가 조금씩 바뀌듯이 — 이해가 감정적으로 완결됐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 왜 만들었는지, 왜 끝나야 하는지, 왜 지금 나가야 하는지. 세 개가 하나로 포개졌다.

나갈 수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거릿이 코어의 아키텍처 안에 반쯤 녹아 있었다. 그 경계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스템이 시작되는지, 맨눈으로는 구분이 안 됐다. 수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본인도 눈치채지 못하는 속도로 스며든 것이었다.

"같이 나가요."

"난 못 나가."

"방법을 찾을게요."

"에이드리언." 마거릿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내가 어디서부터 시스템인지 나도 몰라."

"그럼 같이 알아내야죠."

잠깐의 침묵 뒤에 마거릿이 말했다. "주관적 시간으로 열 시간쯤 남았어. 그때까지 방법을 못 찾으면 넌 돌아올 수 없어."

"알아요."

"알면서도?"

에이드리언은 살면서 한 번도 사람을 위해 머문 적이 없었다. 항상 먼저 나왔다. 예측 가능한 상처 앞에서, 예측 가능하게. 그것이 스물아홉 해 동안 자신을 지킨 방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 그것이 지키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일처럼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속도로.

"남을게요. 방법 찾을 때까지."

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거릿이 아주 작게 말했다.

"...왜."

에이드리언은 잠시 생각했다. 대답을 찾는 게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맞았거든요. 세상을 판단만 하는 건 이제 지겨워요."


다음 화 예고: 에이드리언이 어머니를 꺼내는 방법은 단 하나 — 진품과 복제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그는 평생 그 일을 해왔다. 이번엔 어머니가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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