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신호 소실

어머니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드리언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머릿속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다. 손끝으로 잡힐 것 같은 거리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 전혀 다른 기억이 들어차 있었다.

어떤 죽은 사람의 어머니. 너무 또렷하고, 너무 완결되고, 너무 따뜻한 기억. 마치 오래 간직해온 것처럼 자기 것 같았다.

'잠깐.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그 생각 하나를 붙잡는 데 3초가 걸렸다. 3초는 너무 길었다.


처음엔 작은 것들이었다. 딥 레이어에서 움직이다 보면 생기는 잡음 같은 것 — 죽은 사람의 사고를 잠깐 자기 것으로 오인하는 일. 에이드리언은 그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가 없이 이 공간을 쓸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유나가 먼저 알아챘다. 창백한 안색과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눈빛으로, 그가 말했다.

"경계가 흐려지고 있어요."

에이드리언이 돌아봤다. "뭐가요?"

"당신이요. 생각의 윤곽이. 너무 부드러워지고 있어요."

'부드러워진다.' 망자들의 사고는 다 그랬다. 완결됐다. 거칠지 않았다. 모서리가 없었다.


코어를 향해 더 내려가자 속도가 붙었다. 에이드리언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연도를 헷갈렸다. 그 순간 멈췄다.

'내가 방금.'

당나라 618년, 송나라 960년. 기초 중의 기초. 10년 넘게 단 한 번도 헷갈린 적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확인하려는데 자꾸 다른 숫자들이 끼어들었다. 누군가의 기일. 누군가의 생일. 누군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했던 날짜들이, 마치 원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농담이 늦게 왔다. 그것도 이상했다.

에이드리언의 유머는 반사적인 것이었다. 상황이 보이면 자동으로 관찰이 튀어나오는 것. 그런데 지금은 한 박자 느렸다. 관찰은 왔지만 날이 서 있지 않았다. 둔하고, 밋밋하고, 마치 다른 사람이 주석을 단 것 같았다.

'나다운가? 이게?' 확인하려는데 비교 기준 자체가 흔들렸다.


그보다 먼저, 더 무서운 것이 왔다.

'연락했어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올라온 생각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생각을 잡아 뒤집어봤다. 누구한테? 연락하면 뭘? 아무 미래가 없었다. 결론도 없고 방향도 없었다. 후회만 있었다. 완결된 슬픔.

'이건 죽은 사람의 생각이다.' '이건 내 것이 아니다.'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네트워크에 이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나와 사이퍼가 잡아당겼다. 물리적으로 당기는 건 아니었다. 이쪽으로 신호를 강하게 보낸 것인데, 그 신호가 줄처럼 느껴졌다. 안쪽으로 흘러 들어가던 에이드리언의 주의가 그 줄에 걸려 멈췄다.

사이퍼가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아뇨." 처음으로 즉시 대답했다.


에이드리언은 딥 레이어 바깥쪽에 자리를 잡고 멈췄다. 조금 전까지 있던 용해 구역에서 충분히 멀리. 안전한 거리였다.

'내가 거기서 뭘 느꼈나.'

복기했다. 고요함이었다. 완전한 고요함. 망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그들의 정착된 사고가 스며드는 것처럼 — 싸울 필요가 사라졌다. 예측하지 않아도 됐다. 회피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됐다. 새벽 세 시에 오래된 대화 실수를 꺼내어 다시 들춰보지 않아도 됐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에이드리언은 그 사실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인정했다. 좋았다. 잠깐이었지만. 죽은 자의 고요함이 도피처처럼 느껴졌다.


그게 제일 위험했다.

에이드리언 케슬러-박. 스물아홉 살. 죽음을 좋아하는 타입도, 죽음에 흥미 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귀찮고, 자극이 부족하고, 예측이 쉬운 세상이 지루한 사람. 그런 사람에게, 모든 것이 정리된 공간이 열려 있었다. 모든 것이 완결된 공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공간. 요구도 없고 질문도 없고 내일도 없는 공간.

'설계자가 일부러 만든 건가.' 아니면 그냥 이 공간의 특성인 건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알고 싶지 않았다.


기억을 뒤졌다. 나다운 기억. 에이드리언다운 기억. 완결되지 않은 것. 거칠고, 불쾌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것.

베를린이었다. 의뢰인이 있었다. 중년 여성, 민나라는 이름이었는지 마리아라는 이름이었는지 — 에이드리언은 클라이언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가져온 물건은 명나라 자기가 아니었다. 가짜였다. 에이드리언은 일 초 만에 봤다.

그런데 그 사람 손이 너무 많이 떨렸다. 테이블 위에 서류가 뒤집혀 놓여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읽었다 — 읽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혼 서류였다.

그는 진짜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가짜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이 물건은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고마워하며 나갔다.


그 기억은 더러웠다. 불완전했다. 지금도 잘못된 선택인지 옳은 선택인지 결론이 없었다.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도 몰랐다. 가짜 자기를 진짜인 줄 알고 팔았을 수도, 또 다른 거짓말의 시작이었을 수도, 그저 위안이 됐을 수도 있었다.

끝나지 않은 것. 모서리가 아직 살아 있는 것. 에이드리언은 그 기억의 거칠기를 느꼈다. 망자들의 기억과 달랐다. 완결 없음. 후회 진행형. 물음 현재형.

'살아있다.' 이 기억이 나의 것이다.


그걸 붙잡고 돌아왔다.

용해 구역 바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들이 다시 경계를 찾았다. 다른 이름들이 밀려왔지만 M이라는 글자가 그것들을 밀어냈다. 지금은 아니다.

어머니의 이름이 돌아왔다. 마거릿. 마거릿 케슬러-박.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름이었는데. 왜 그렇게 찾을 수가 없었는지.

에이드리언은 몸이 없는데도 손이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결 같은 것이 지나가는 느낌. 파도가 빠지고 나서 모래가 제자리를 찾는 것 같은 느낌.

"괜찮아요?" 유나가 다시 물었다.

"거의요."

"솔직하게요."

"거의 괜찮아요. 지금은."

"얼마나 심했어요?"

에이드리언은 잠깐 생각했다. "어머니 이름을 잊었어요."

유나가 조용해졌다. 사이퍼도.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킨 것처럼, 둘 다 한동안 아무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끝내야 해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목소리에 평소의 건조함과는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힘이 아니라 결기에 가까운 무언가. "빨리."


그 순간, 새 신호가 들어왔다.

막 입력된 것. 살아있는 사고. 설계자였다. 수신자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그 신호의 방향은 에이드리언을 향하고 있었다. 네트워크 안에서 누군가가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뒤를 따라오다 갑자기 어깨를 짚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했잖아요. 제안은 아직 유효해요. 다음에 흘러가기 시작하면, 아무도 당신을 잡아주지 않을 거예요.'

에이드리언은 그 메시지를 한 번 읽었다.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확인했다.

열화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었다. 설계자가 가속시켰다. 도구로 쓴 것이었다.

'당연하지.' 에이드리언은 분노를 느꼈다. 깨끗하고, 완전하고, 살아있는 분노. 망자의 고요함과 정반대의 것. 망자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혼자 불꽃을 켜는 것 같은 분노. '이걸 느끼는 한 나는 아직 여기 있는 거다.'


다음 화 예고: 할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 유나가 마침내 말했다. 그리고 그 답은 가족에 대한 다른 질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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