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전략적 침묵

설계자의 재배치가 끝난 뒤, 네트워크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에이드리언은 딥 레이어의 어딘가에 떠 있었다. 클러스터들이 멀리 빛나고 있었다 — 폭풍이 지나간 밤하늘처럼, 별들은 그대로인데 뭔가가 달랐다.

유나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그녀의 형체가 평소보다 희미했다. 얇아진 — 그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빚어진 모양은 그대로인데 두께가 반쪽이 된 도자기처럼, 안이 들여다보일 것 같았다.

에이드리언은 그녀를 보면서 훼손된 유물을 감정할 때의 눈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강제로 이동당했다. 뭔가를 잃었다. '설계자가 그걸 알면서 한 거다.'

"많이 다쳤어?"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유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다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조금 덜 남아있어요."


에이드리언은 분노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느끼는 것보다 분류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지금 그 분류는 세 겹이었다. 가장 아래에는 감금 — 자신이 컴퓨터 안에 갇혔다는 사실. 그 위에는 훼손 — 할아버지의 조각이 삭제됐다는 것. 그리고 가장 위에, 예상보다 훨씬 무거운 세 번째 층 —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망가졌다는 것.

세 번째가 제일 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당혹스러웠다.

"할 얘기가 있어요."

유나가 먼저 꺼냈다.

"당신한테 숨긴 게 있어서요."

'오, 물론이지.' 에이드리언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들을게요."


유나는 말했다.

M을 만난 건 헨리보다 먼저였다고.

"데이터 과학 박사 과정 2년 차였을 때, 제안을 받았어요. 이름도 없는 연구 프로젝트. 디지털 잔류물에 관한 거였는데 — 당시엔 그 개념 자체가 가설이었거든요. 저는 천재적인 발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들어갔어요?"

"당연히요. 저는 그때 스물셋이었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으니까요."

에이드리언은 스물셋을 기억했다. 자신은 그 나이에 베를린에서 위조 청동기를 판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세상은 바꿔지는 게 아니라 읽혀지는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M이 설계자예요."

유나가 말했다.

"제가 처음 알아챈 건 아니에요. 헨리 선생님이 먼저 의심했고, 저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어요. 다만—"

그녀가 잠깐 멈췄다. 뭔가를 고르는 것 같았다. 꺼낼 말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저는 설계자의 첫 번째 직원이었어요. 헨리 선생님보다 먼저."


에이드리언은 그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유나 → M(설계자) → 헨리. 자신이 그려온 그림과 순서가 달랐다. 중심이 이동하면 그림 전체가 바뀐다. '내가 알던 구도가 아니다.'

"공개 폭로를 결심한 건 언제예요?"

"수확이 시작되고 나서요. 처음엔 데이터를 보존하는 프로젝트인 줄 알았어요. 죽은 사람의 생각을 아카이브하는 거라고. 그런데 추출이 시작됐을 때 — 원본이 훼손되는 걸 봤어요. 복사가 아니라 이전이었어요. 죽은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폭로했다가 죽었고요."

"그리고 폭로했다가 죽었어요."

담담하고 완결된 — 죽은 사람의 문법. 에이드리언은 그 문법이 싫었다.

"왜 나한테 처음부터 말 안 했어요?"

"판단하고 싶었어요. 얼마나 알려줄지를."

에이드리언은 잠시 그 문장을 들고 있었다. 무게를 가늠하듯.

"그건 정보 과부하로부터 보호하려던 게 아니잖아요."

"아니요."

"나를 실험했던 거잖아요."

유나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음도 일종의 답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유나를 다시 읽었다.

죽은 사람은 거짓말을 못 한다 — 이 네트워크의 물리 법칙이었다. 그렇다면 유나가 할 수 있는 건 침묵뿐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녀의 사고 패턴을 살폈다. 과거에 고정된 구조, 미래를 향하지 않는 지향, 생물학적 잡음의 부재, 그렇다고 기계처럼 정밀하지도 않은 — 그녀는 유나였다. 다만 정보를 쪼개서 내보낸 유나.

'합리적이다. 빌어먹게도.'

"전임자 얘기 기억해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한꺼번에 다 알았다가 녹아내리고 있는 사람."

유나가 가만히 있었다.

"나를 보호하려던 거죠."

"네."

"설명하지 않아도 됐어요."

"알아요."

에이드리언은 한숨을 쉬고 싶었다. 네트워크에 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엔 먼저 말해줘요. 내가 감당 못 하면 내가 말할게요."


말이 끝나자마자 낯선 신호가 접근했다.

에이드리언은 즉각 감지했다. 살아있는 서명이었다. 불규칙했다 — 죽은 척 흉내내려다가 실패한 흔적. 오래된 것처럼 보이려고 인공 균열을 낸 도자기를, 진짜 균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걸 모르는 채로 만든 것과 같은 냄새.

"접근해도 돼요."

상대가 멈췄다. 잠시 후 형체가 나타났다. 키도 나이도 짐작하기 어려운 윤곽이었다. 의도적으로 지워진 형체.

"사이퍼예요."

목소리는 갈아내듯 중성화되어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출신도 특정할 수 없게 — 오랫동안 숨어온 사람이 오랫동안 갈고닦은 목소리였다.

'전문가다.'

"데이터 엔지니어. 수확된 데이터를 받는 쪽 회사에서 왔어요. 이 안에 들어온 지 몇 주 됐고요 — 실제 시간으론 몇 시간이겠지만."

"수확자."

"이전엔요. 지금은 당신이랑 같은 처지예요. 설계자가 탈출 경로를 막았어요."

에이드리언은 상대를 읽었다. 살아있는 건 확실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 이 순간, 이 둘을 다 알고 있다는 게 상황 전체였다.

"뭘 원해요?"

"같이 나가고 싶어요."

"나랑 있으면 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감정사잖아요."

에이드리언은 그 말이 싫었다. 자신의 직업이 이미 이 안에서 통용되는 이름이 됐다는 사실이. '유물 감정사. 코드 네임처럼 쓰이고 있다.'

"사이퍼가 뭘 알고 있는지 들어볼게요."


셋이 모였다.

에이드리언, 유나, 사이퍼. 죽은 자 둘, 산 자 하나 — 분류하면 2대 1이었지만, 에이드리언은 자신이 어느 쪽인지 분류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은.

사이퍼가 말했다.

"네트워크는 분산 인프라로 운영돼요. 수확된 데이터는 익명화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세 개의 AI 기업으로 전달되고요. 기업들은 데이터 출처를 몰라요. 다들 합법적으로 구매했다고 생각해요."

"중간 유통업자."

"메리디안 랩스."

에이드리언은 그 이름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M. M = Meridian. '그리 섬세하지 않다. 설계자가 이니셜에 집착하는 건가, 아니면 이미 잡힐 걸 알고 있는 건가.'

"메리디안 랩스 뒤에 진짜 신원이 있어요?"

"레이어가 여러 개예요. 페이퍼 컴퍼니들. 하지만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개인이 나와요."

"찾을 수 있어요?"

"당신이랑 같이라면요."

에이드리언은 사이퍼를 한 번 더 봤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었다. 일단은 활용 가능한 자원이었다.

"내가 네트워크 내부 논리를 알고 있어요."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사이퍼가 기술 인프라를 알고 있고요."

"지도를 만들자는 얘기예요?"

"그게 가장 빠를 것 같아서요."


셋은 작업을 시작했다.

유나가 네트워크의 감정 클러스터 구조를 설명했다. 사이퍼가 물리 서버 배치와 데이터 흐름을 대조했다. 에이드리언이 패턴을 읽었다.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죽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디로 가는지, 누가 거두어들이는지, 어떻게 AI가 그것을 먹고 자라는지.

작업하는 내내 에이드리언의 머릿속에는 질문 하나가 돌고 있었다. 불편함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AI가 죽은 사람의 패턴을 흡수하는 건 데이터였다. 죽은 사람이 쓴 글이 책에 실리면 AI가 학습한다. 그게 나쁜 거였나. 그런데 왜, 위장된 납골당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그 불쾌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사이퍼가 작업 중간에 말했다.

"한 가지 더 있어요."

에이드리언이 올려봤다.

"AI가 수확된 데이터에서 뭔가를 학습하고 있어요. 단순히 패턴이 아니라—"

사이퍼가 잠깐 멈췄다.

"AI 어시스턴트를 써본 적 있어요? 대화하다가 가끔 — 너무 잘 안다는 느낌이 들 때요. 인간 본성에 대해 알고리즘이 알 수 없는 걸 아는 것처럼."

에이드리언은 멈췄다.

"AI가 죽은 사람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네."

조용했다.

에이드리언은 지난 몇 년간 써온 AI 어시스턴트들을 떠올렸다. 감정 평가 보조 도구. 경매 데이터 분석기. 가끔 너무 적절하게 답했던 것들. 너무 정확하게 사람을 이해했던 것들. 그건 알고리즘의 성숙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속이 좋지 않다.'


다음 화 예고: 헨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들이 있다 — 그리고 지운 흔적마저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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