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꽃병 부검

명나라 도자기를 감정하는 데 에이드리언 케슬러-박에게는 정확히 4초가 필요했다.

손가락이 유약 표면을 스치는 순간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왔다. 유약의 빙렬 패턴이 80년쯤 뒤틀려 있었고, 태토의 밀도는 1920년대 고급 모조품에 딱 맞았다.

가짜였다.

꽃병을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의뢰인의 손을 살폈다.

오십 대 초반의 남자였다.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던 자국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가방 속에는 이혼합의서가 절반쯤 보였다. 꽃병은 아내에게서 받은 결혼 선물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그 단어에서 잠깐 걸렸다.

에이드리언은 돋보기를 들어 굽 바닥을 다시 살폈다.

'이 남자는 지금 전부 걸고 있다.'

가슴이 어떤 상태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보였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속도, 커피잔을 내려놓는 위치, 대답하기 전에 잠깐 눈이 먼 데로 가는 것. 에이드리언은 오래전부터 그런 걸 보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거짓말이었다. 40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의뢰인은 안도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 표정마저 에이드리언은 읽었다. 아직 결과를 모른다는 사실이 그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에이드리언의 작업실은 창고를 개조한 건물 3층에 있었다.

세입자가 두 명이었다. 1층은 자전거 수리점이 썼고, 2층은 비어 있었다. 3층은 그가 혼자 썼다. 작업대 하나, 의자 둘, 조명 세 개. 그것으로 충분했다. 물건은 많은 걸 요구하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의뢰인을 돌려보낸 뒤 꽃병을 다시 작업대 위에 올렸다.

1920년대 독일산이었다. 장인의 솜씨가 나쁘지 않았다. 원본을 본 적 없는 눈이라면 충분히 속을 만했다.

'헷갈리는 게 목적이니까.'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가 멈췄다. 진실을 어떻게 포장해야 덜 아플지 생각하다가, 그냥 쓰기로 했다. 그게 더 나은 배려인지는 몰랐다. 그냥 에이드리언이 할 수 있는 배려는 그것뿐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어머니였다.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두 번째도 어머니였다. 에이드리언은 이번에도 그냥 두었다.

세 번째는 갤러리 오너였다. 목적은 뻔했다. 진위 의심이 가는 물건을 떠넘기고 깨끗하게 빠지려는 것.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다.

퇴근길은 항상 걸어 다녔다. 지하철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저녁 6시의 거리는 그에게 일종의 소음이었다.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 카페의 바리스타가 웃고 있었다. 입꼬리 각도가 팁을 최대화하는 데 최적화된 형태였다. 오른쪽 눈가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훈련된 웃음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게 나쁜 건지 모르겠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버텼다.

조깅하는 남자가 옆을 지나쳤다. 왼쪽 신발이 오른쪽보다 두 달쯤 새것이었다.

'발목. 오른쪽.'

에이드리언은 시선을 내렸다. 이 능력은 꺼지지 않았다. 스위치 같은 게 없었다.

사람을 보면 보였다. 물건을 보면 보였다. 닳은 신발이나 손의 굳은살, 눈이 움직이는 방향, 숨을 고르는 타이밍. 처음에는 피하려고 했다. 지금은 그냥 두었다. 어차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보다 물건을 더 많이 봤다. 물건은 자신을 들여다봤다고 화내지 않았다.


작업실로 돌아오니 우편이 와 있었다.

정식 봉투였다. 법무법인 레터헤드가 찍혀 있었다.

헨리 케슬러 씨의 유산 정리를 위해 귀하의 방문을 요청합니다.

에이드리언은 봉투를 들고 한동안 서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정확히는, 생각이 오기 전에 뭔가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할아버지가 죽었다.

'아.'

그게 전부였다.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한 음절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2년 전이었다. 그 이후로 편지가 세 통 왔다. 에이드리언은 서랍을 열었다. 편지들이 뜯지 않은 채로 있었다. 헨리의 필체였다. 흑색 잉크, 특유의 필압.

그는 봉투를 편지들 위에 올려놓고 서랍을 닫았다.

한국어는 그에게 필요 없는 언어라고 오래전에 정했다.


밤 11시였다.

보고서는 완성됐고, 청구서도 보냈다. 새로운 의뢰 두 건이 메일로 들어와 있었는데, 둘 다 흥미롭지 않았다.

하나는 대기업 오너 집안의 조선 민화였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구도만으로도 19세기 후반 장식용이라는 게 읽혔다. 다른 하나는 유럽 귀족 가문의 갑주였는데, 의뢰서 문체로 볼 때 의뢰인은 이미 자기 물건이 진품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언에게는 확인 도장만 받으러 오는 종류였다.

둘 다 거절하는 쪽으로 초안을 잡다가 손을 멈췄다.

시선이 서랍 쪽으로 갔다.

'보지 않기로 했잖아.'

커피를 마저 마셨다. 식어 있었다. 차가운 커피를 그냥 삼키면서 화면을 봤지만 글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서랍을 열었다.

세 통 중 제일 오래된 것을 집었다. 봉투 겉면을 잠깐 들여다봤다. 할아버지의 손이 이걸 접었을 것이다. 에이드리언은 그 손을 기억했다. 마디가 굵고 손등에 검버섯이 있던 손. 물건을 잡을 때 항상 양손을 쓰던 사람이었다.

편지를 열었다.

헨리의 필체. 흑색 잉크. 특유의 필압이 종이를 통해 느껴졌다.

단 한 줄이었다.

'네가 진짜를 알아볼 거다. 그래서 네가 해야 한다.'

에이드리언은 편지를 작업대에 내려놓았다. 할아버지 특유의 과장법이었다. 평생 이런 식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말을 마치 세상 전부인 것처럼 썼다. 그래서 싫었다. 그래서 편지를 뜯지 않았다.

그는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열었다.

'어차피 유산 정리는 해야 한다.'

합리적인 이유였다. 에이드리언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움직일 수 있었다.


자정이 넘어 두 번째 편지를 열었다.

비어 있었다.

세 번째는 집지 않았다. 다른 두 통보다 두꺼웠다. 종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뭔가가 들어 있다는 걸 손끝으로 알 수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봉투를 잠깐 들고 있다가, 서랍 맨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

창밖에서 빗소리가 시작됐다.

'내일 열어보면 된다.'


다음 화 예고: 헨리의 집은 박물관이거나 창고이거나, 아니면 둘 다였다. 그리고 지하에는 전기 배선이 있었는데, 이 건물에는 애초에 지하가 없어야 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화: 실사(實査)

29화: 마지막 감정

22화: 비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