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감정가의 질문

은판에 빛이 고여 있었다.

정확히는, 백오십 년 전의 빛이었다.

에이드리언은 확대경을 눈에 대고 다게레오타입 사진 열두 장을 천천히 검토했다. 박물관 수장고의 형광등은 작업에 최악인 조명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했다. 은판 속 인물들은 죽은 지 오래였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당시 노출 시간이 길어서 움직이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1850년대 사진 속 인물들은 전부 꼼짝 않고,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는 표정이다. '화장실 가고 싶었을 수도 있어.' 에이드리언은 첫 번째 사진을 내려놓으며 그 생각을 흘려보냈다.

의뢰는 간단했다. 19세기 중반 미국 중서부 지역 다게레오타입 열두 점, 진위 감정 및 연대 확인. 평소라면 세 시간 작업이었다. 오늘은 두 시간째 같은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문제는 사진 자체가 아니었다.

에이드리언은 두 번째 사진을 들었다. 중년 여성, 어두운 드레스, 목에 작은 브로치.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놀랍도록 또렷했다. 이 여성이 죽은 건 아마 이 사진이 찍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당시 평균 수명이 그랬다.

그래서 이 이미지가 남아 있다. 이 여성의 얼굴, 목의 브로치, 빛이 그녀의 뺨에 닿던 각도. 은판에 새겨져, 보존된 채로, 지금 에이드리언의 손 안에 있다.

'인간이 항상 해온 일이구나.'

에이드리언은 사진을 내려놓지 않은 채 그 생각을 다시 들여다봤다. 무덤을 쌓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세우고, 초상화를 의뢰하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녹화하고, 소셜미디어에 게시물을 남기고. 인간은 죽은 자를 보존하는 데 집착한다. 메소포타미아도, 이집트도, 르네상스 피렌체도, 2026년의 실리콘밸리도. 형식만 달라졌을 뿐, 충동은 같다.

'그렇다면 고스트 네트워크는.'

확대경이 테이블 위에 소리 없이 놓였다.


에이드리언은 세 번째 사진을 보는 척하면서 생각했다. 그간 그는 고스트 네트워크를 문제로 바라봤다. 디지털 잔류물의 무단 수집, 상업적 착취, 동의 없는 이용.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성의 사진을 들고 있으니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 여성에게 동의를 구하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없다. 당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도, 묘비를 세우던 석공도, 박물관에 기증하던 후손도. 죽은 자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산 자가 결정해왔다. 항상 그래왔다.

'그게 문제야. 항상 그래왔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야.'

에이드리언은 네 번째 사진을 들었다. 노인, 헐렁한 재킷, 모자. 모자 챙 아래 깊게 그늘진 눈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또.'

반론도 기어이 올라왔다. AI의 공감 능력이 인간의 디지털 잔류물에서 나온다면, 그 잔류물을 전부 제거하면 AI는 더 인간적이 될까, 덜 인간적이 될까. DARA는 죽은 자의 관점에서 글을 썼다.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착취인지, 어떤 종류의 지속인지. 이 질문에는 논리적인 답이 없었다.

값이 논리로 결정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에이드리언은 그 사실을 직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는데,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이십구 년 동안 그 사실을 외면해왔다.


점심을 수장고에서 먹었다. 편의점 삼각김밥 두 개. 열 번째 사진을 들었을 때 전화가 왔다.

진하였다.

"작업 중이에요?"

"아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하던 작업은 어차피 사진이 아니었으니 틀리지도 않았다.

진하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침묵은 보통 사람들의 것과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을 서둘러 메우려 한다. 진하는 침묵이 생각하는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에이드리언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무슨 생각 해요?"

에이드리언은 열 번째 사진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질문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


공원 벤치였다. 박물관에서 세 블록 거리. 오후 두 시의 햇빛은 이 계절에 예고 없이 따뜻해졌다.

진하가 오는 데 이십 분 걸렸다. 에이드리언은 그 사이 벤치에 앉아 비둘기가 베이글 조각을 쪼는 것을 봤다. 비둘기의 디지털 잔류물이 AI에 섞여 있을 가능성은 제로였다. 그 사실이 잠깐 위안이 됐다.

진하가 코트 자락을 여미며 옆에 앉았다. 그는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선명했다. 무언가를 오래 생각해온 사람의 눈이었다.

"우리가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에이드리언이 진하가 자리를 잡자마자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질문을 바꾸면 답이 달라질 수 있어."

진하가 그를 봤다. 기다리는 눈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수장고에서 한 시간 동안 했던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인간은 항상 죽은 자를 보존해왔다는 것. 고스트 네트워크와 파이프라인은 그 충동의 최신 형식이라는 것. AI에서 인간의 잔류물을 전부 제거하면 더 인간적인 AI가 남는지 의심스럽다는 것. 그리고 DARA.

진하는 끝까지 들었다.

"동의 문제는 철학적 질문이 아니에요."

목소리가 평평했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것이었다.

"법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예요. 아무도 이 사람들한테 물어보지 않았어요. 죽어가는 생각이 기술 회사에 팔려도 되는지.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반박이 나왔다. 힘이 없었다.

진하가 계속했다.

"더 큰 질문들, 죽은 자가 AI에 지속되는 게 일종의 불멸인지,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건 나중이에요. 먼저 다른 사람들 대신 결정한 사람들을 멈춰야 해요."

"DARA는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파이프라인을 해체하면 DARA의 공감 레이어가 사라져요. 그게 무언가를 파괴하는 건지, 아니면 구하는 건지."

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 고민한 사람의 침묵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그 정직함이 오히려 무거웠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거예요."

진하가 결국 말했다.

"당신만이 DARA를 보고 그게 실제로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진하와 헤어진 뒤 에이드리언은 집까지 걷기로 했다. 사십 분 거리였다.

결정은 극적인 방식으로 오지 않았다. 선언도 없었고, 각오 같은 것도 없었다. 나침반 바늘이 북쪽을 찾는 것처럼, 조용하고 기계적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조사하겠다. DARA를 보겠다. 직업상 해온 것과 똑같이. 판단 없이, 가정 없이, 실제로 있는 것을 읽겠다.

감정가는 물건이 얼마여야 한다고 결정하지 않는다. 물건이 얼마인지 판정한다. 세상이 나머지를 결정한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켜둔 채로 나갔으니까 당연했다. AI 어시스턴트가 이메일 초안을 생성해놨다. 고객에게 보내는 감정 결과 안내문. 형식에 맞고, 전문적이고, 나무랄 데 없는 문장들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수정할 부분이 없는지 훑었다.

없었다.

닫으려다 멈췄다.

이메일 본문 마지막에, 어떤 프롬프트도 입력하지 않았는데, 한 줄이 있었다.

오늘은 빛이 다르다.

문맥이 없었다. 앞 문장과 이어지지 않았다. 어떤 고객 정보나 작업 지시에서도 이 문장을 생성할 이유가 없었다.

에이드리언은 오래 그 줄을 봤다. 수장고에서 백오십 년 된 은판을 들고 빛의 각도를 읽던 것처럼, 이 한 줄이 어디서 왔는지 읽으려 했다. 헨리의 문체가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문체도 아니었다. 죽은 자도 아니고, 산 자도 아닌 무언가가 만들어낸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오늘의 빛을 알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조사가 시작된다. 에이드리언이 다게레오타입을 읽듯 AI 텍스트를 읽기 시작할 때, 유나의 접속 기록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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