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설계자의 정원

에이드리언은 할아버지의 조각들을 찾아 더 깊이 내려갔다. 표면 쪽에 있는 것들, 정제되고 다듬어진 것들 말고. 누군가가 지우려다가 끝내 지우지 못한 것들을 향해.

유나가 말렸다. 짧은 드레스 자락이 깊어지는 레이어를 따라 희미하게 번지듯, 그녀의 목소리가 에이드리언의 등 뒤에서 걸렸다. "코어에 가까울수록 당신한테 위험해요."

"알아요."

에이드리언은 멈추지 않았다.


헨리의 원래 클러스터는 딥 레이어 가장 오래된 층에 있었다. 처음 네트워크가 형성됐을 때 심어진 조각들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것들에 접근하자마자, 뭔가 어긋났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알아차렸다. 감정사 특유의 감각이었다 — 눈이 아니라 피부로 읽는, 오랜 훈련이 새긴 반사. 손가락 끝으로 도자기 표면을 훑듯 조각들을 살폈다. 색은 맞는데 밀도가 달랐다. 덧칠을 한 것처럼. 원래 물질이 새 층 아래서 다른 질감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편집됐다.'

에이드리언의 위장이 조여들었다. 죽은 할아버지의 기억이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이 어떤 기분인지, 그는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훈련이 먼저 작동했다. 기계적으로, 보호막처럼.

에이드리언은 편집된 조각과 원본 조각을 비교했다. 덧칠된 캔버스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원래 있던 층이 새 층을 통해 질감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결론은 명확했다. 설계자 수준의 접근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헨리의 사고 기록을 수정했다. 지워진 것들이 있었는데, 지워지지 않고 빈 자리의 형태로 남아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빈 자리의 윤곽을 읽었다.

'지운 게 아니라 숨긴 거다. 두 가지는 다르다.'

지운다면 흔적도 없어야 한다. 숨긴다면 윤곽이 남는다. 그리고 윤곽은 읽는 자에게 말을 건다.


윤곽에서 읽힌 것들이 있었다.

첫 번째 — 설계자의 실제 신원. 헨리가 알고 있었다. 이름을 적지는 않았지만, 다른 단서들이 깊게 배어있었다. 관계의 결을 읽는 것, 그건 에이드리언이 잘하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일했다. 오래. 그리고 신뢰가 있었는데, 그 신뢰의 무게가 조각 곳곳에 가라앉아 있었다. 단순한 연구 파트너의 무게가 아니었다.

'가족처럼 친밀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가족이거나.'

두 번째 — 헨리가 숨겼던 것.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반대편이 아니었다. 이 네트워크의 상업적 가능성을 알았고, 알면서 참여했다. 수년간 AI 기업들에 데이터를 팔았다. 돈을 받았다.

에이드리언은 그 사실을 아주 천천히 소화했다. 할아버지가. 그 사람이. 그 손으로.


에이드리언은 더 오래된 클러스터로 이동했다. 역사가 긴 단위들, 설계자가 네트워크를 혼자 이어받은 이후의 기록들이었다. 편집되지 않은 것들. 거기서 설계자의 관점을 흔적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설계자는 이것을 단순한 사업으로 보지 않았다. 그게 분명했다. 이 정도로 오래, 이 정도로 세밀하게 운영된 것들에는 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온도가 있었다. 설계자는 이게 의미있다고 믿었다. 죽은 사람의 사고 패턴을 AI에 통합하면 인공지능이 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고. 더 공감할 수 있고, 더 실제 같아지고,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죽은 이들의 지혜를 산 자들에게 기계를 통해 전달하는 번역자가 되려 했다.

'최악의 악당들은 자기가 선의를 갖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다.'

에이드리언은 그 생각을 처음 한 게 아니었다. 고미술 경매장에서 수십 번 봤다. 좋은 의도로 훔친 것들을, 더 좋은 보존을 위해 약탈한 유물들을. 제 손으로 불을 지르면서 구원이라 부르는 자들을.


헨리가 돌아선 건 수확의 파괴성을 알고 나서였다. 원본이 훼손된다. 추출할 때마다 기억이 조금씩 사라진다. 복사가 아니라 이전이었고, 이전은 곧 삭제였다. 헨리가 반대로 돌아선 건 윤리 때문이 아니었다 — 적어도 처음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할머니. 루트 노드. 이 네트워크 전체의 씨앗. 헨리가 처음 이 망을 만든 이유였다. 할머니의 의식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그 보존하려던 것이 수확 과정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윤리는 나중에 왔다. 사랑이 먼저였다.'

에이드리언은 그 사실 앞에서 한참 멈췄다. 한 사람을 움직인 것이 원칙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것, 그것이 에이드리언을 더 무겁게 했다.


에이드리언은 헨리의 조각에서 시선을 거뒀다.

할아버지를 순수한 피해자로 생각했다. 설계자에게 배신당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그게 절반만 맞았다. 헨리는 이 시스템을 함께 만들었고, 이익을 얻었고, 문제를 알면서도 한동안 계속했다. 자신의 것이 위협받을 때서야 멈췄다.

에이드리언은 고미술 시장에서 일했다. 출처를 묻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의심스러운 물건의 진위를 확인해줬을 때가 있었다. 좋은 돈을 받았다. 역사를 편리하게 모른 척한 날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고 부드럽게 연결된 선들이었는데, 그 선들이 만드는 그림을 보지 않으려 했다.

'헨리의 죄가 나의 죄다. 규모만 다르다.'

자기혐오는 사치였다. 지금 그걸 할 시간도, 그럴 권리도 없었다.


가장 오래된 조각들 사이를 헤매다가, 에이드리언은 찾았다. 헨리가 숨겨놓은 것을. 설계자에게도, 네트워크 자체에게도 감춰진 것을. 할머니의 루트 노드 안에, 마치 한 물건 속에 들어간 다른 물건처럼 그것이 있었다.

편지였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사고의 형태로 남아있는, 헨리의 마지막 말이었다. 수신자는 에이드리언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조각을 읽었다. 다시 읽었다. 세 번째도 읽었는데, 세 번째에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어서 너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설계자는 우리 가족 중 한 명이다. 용서해주길.'


에이드리언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네트워크의 조용한 구역이었다.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생각들이 주변에서 희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가족. 한국어로 가족, 영어로 family — 두 언어 모두에서 그 단어의 테두리는 달랐다. 어떤 언어에서도 이 무게를 완전히 담는 그릇은 없었다.

에이드리언의 가족은 넓지 않았다. 헨리가 있었고, 이제 없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 어머니는. M. 마거릿. 아니, 거기까지는 지금 생각하지 마.

에이드리언은 유나를 찾았다. 그녀는 가까이 있었다. 소리 없이 따라온 것 같았다. 네트워크 안에서 그녀의 존재는 늘 이런 식이었다 —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한 가지 물어볼게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에이드리언 스스로도 알아차렸다.

"할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유나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전에 멈추는 유나의 침묵을 에이드리언은 이제 읽을 수 있었다. 그 침묵은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유나."

"네."

"알고 있죠?"

대답은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아주 작게.

"네."


다음 화 예고: 에이드리언은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가고 있었다 — 하나씩, 천천히, 다른 죽음들이 그 자리를 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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